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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굴암 관람 유감 - 조속한 전실 개방을 촉구한다
    미학(美學) 2021. 4. 17. 06:02

     

    석굴암 원형 탐구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보려 한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석굴암 관람에 대해 문화재 당국에 건의드릴 게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입장료 6000원이라는 비싼 관람비용에 대한 대가를 국민들에게 지불해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우리가 애써 토함산을 올라 비좁은 목조 전각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유리 보호막 속으로 보이는 석굴암 전실과 주실 안의 본존불 모습뿐이다. 방금 말한 거대한 유리가 전면을 통째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유리막은 1971년 설치됐다) 

     

    여러 번 말했거니와 관람객들은 이 유리막 밖에서도 절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플래시 빛이 석굴암에 손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되나 그렇다고 다른 문화재처럼 플래시 없이 찍는 것이 허락되지도 않는다. 일일이 제재하기 귀찮으니 아예 촬영 자체를 원천 봉쇄한 것인데, 불국사 주지의 허가서를 가져오면 가능하다나 어떻다나......

     

    재차 말하지만 이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이니 과잉보호까지는 이해하겠으나 경비원의 불친절을 넘어 고압적이기까지 한 자세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한마디로 꼬우면 관람하지 말라는 식인데, 그렇다고 입장료를 돌려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유리창 너머의 일견(一見)에 불과하나 볼 건 다 봤으니 입장료 반환소송을 해도 질게 뻔하다.--;;

     

    솔직한 문답을 받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입장료가 과하다 생각할 것이며, (주차요금도 불국사보다 1000원 비싸다) 나아가 이게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걸작 문화재요, 나아가 동양 무비(無比)의 예술품인가 의심할 것이다. 심하게는 '부처님 팔아 떼돈 버는구나'하는 생각도 할 것이다. 이는 석굴암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관람환경의 지적으로서, 사진을 남겨 두 번 볼 수도 없고 오직 유리 너머로 한 번 볼 수밖에 없는, 오직 그 한 번의 기회에 6000원을 지불한다는 건 기회비용의 효용마저 따지게 만든다. 

     

     

    보존을 위해 유리막을 세워 안을 자세히 볼 수 없다. 사진=한문화타임즈
    그림 출처: yes24com.

     

    그래서 그 개선안을 말씀드리고 싶은 바, 우선은 사진 촬영을 허락해주었으면 한다. 안내방송이나 사전 교육 등으로써 플래시를 터뜨리는 일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건의하고 싶은 것은 전실 앞을 막고 있는, 즉 석굴암 전체를 가리고 있는 유리 보호막을 주실 아치문 앞으로 옮겨 주십사 하는 것이다. 지금의 유리는 석굴암 주실의 습기 차단과 온도 유지를 위한 것이니 그것이 주실 문 앞으로 가도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화재 당국에서는 관람객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도 석재의 부식을 가져온다고 하지만 전실은 어차피 개방형이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며, 목조 전각에 환풍기를 설치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관람객들이 떠들 때 나오는 침방울 같은 물기가 달라붙어 부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데 이럴 때는 앓느니 죽겠다는 말밖에.....(브리티시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의 어느 유물·유적도 이렇듯 유난 떠는 곳을 보지 못했다)  

     

    아무튼 전실이 개방된다면 우리는 석굴암의 전실을 거닐며 적어도 아래 사진의 조각상, 즉 인왕상(금강역사)과 팔부신중의 위용을 코 앞에서 느낄 수 있으며, 비도의 사천왕상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주실 앞쪽의 범천과 제석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상 등은 볼 수 없고, 제 아무리 용을 써도 본존불 뒤에 위치한 -석굴암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이라 일컬어지는- 십일면관음보살상, 그리고 앞에서 말한 아치형 천장 및 깨진 덮개돌은 볼 수 없다. 그래도 이 정도만 돼도 웬만큼은 만족하고 돌아올 수 있으리라.

     

     

     볼록렌즈로 찍은 전실 모습
    비도의 사천왕상 
    석굴암의 구조와 조각상
    전실이 허락되면 우리는 주실 입구의 금강역사상과
      팔부신중을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전실이 왜 지금과 같은 전개형이 아닌 굴곡형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진은 전실 좌측(남벽)의 팔부신중상으로 맨 왼쪽 아수라 상의 높이가 다른 팔부중상과 다르다. 이 아수라 상은 꺾여져 오른쪽의 금강역사상과 마주보고 있었다.  
    일제 보수 후 주실에서 바라본 전실이다. 아수라상이 안을 보고 있는 것이 여실하다. 
    일제 보수 공사 전의 좌·우 팔부신중상이다. 전실이 굴곡형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유리막 밖에서 보면 이처럼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석굴암 부조 중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11면 관음보살상은 계속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 석굴암을 만든 천재 건축가 김대성이 이 불상을 본존불의 바로 뒤편에 위치시켜, 주실 후면의 허전함을 상쇄시키는 절묘한 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까닭에 아무리 용을 써도 유리벽을 통해서는 이 작품을 볼 재간이 없다.  
    앞에서 말한 이 천장도 마찬가지이나 그래도 전실만 개방돼도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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