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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의 동해와 한국의 서해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1. 6. 2. 07:12

     

    중국에서 보자면 베트남과 한국은 변방국으로 옛날에는 남만(南蠻)과 동이(東夷)라는 오랑캐였다. 그래서인지 그 두 나라는 출발부터 비슷하니,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남월(南越)이 한무제에 의해 정복되며 현재의 베트남 북쪽이 식민지화되었고, 조선은 기원전 108년 마찬가지로 한무제에 의해 멸망되며 한반도 북쪽이 식민지화되었다. 이후로도 두 나라는 비슷한 길을 걷게 되니 중국이 강할 때는 어김없이 침범을 당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위(魏)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 베트남은 오(吳)나라와 진(晉)나라에 침입당했고, 통일제국 수나라의 침략 또한 같이 겪었으며, 이 땅에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세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있었다면 하노이에는 안남을 멸망시키고 세운 안남도호부가 있었다. 아울러 세 차례의 몽골 침입 또한 똑같이 경험했다.(다른 것은 우리는 항쟁 끝에 속국이 되었지만 베트남은 대승을 거두며 패퇴시켰다)

     

     

    당(唐) 안남도호부와 베트남 민족의 저항
       베트남 500동 화폐 속의 쩐흥다오(陳興道) 장군. 몽골의 침입을 물리친 민족영웅이다.  

     

    위의 사례만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중국의 변방으로서 얼마나 지난한 길을 걸어야 했는지가 미루어 짐작되는데, 베트남은 우리보다 훨씬 혹독해서 1천년 이상을 중국의 식민지로 지내야 했다. 반대로 보자면 그것은 어쩌면 그만큼 중국에 저항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우리의 조선과 시대를 같이하는 월남도 그랬다. 그들도 우리처럼 명나라에 고분고분했다면 자주국의 명분은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저항했고 그 바람에 1407년 명나라 영락제의 공격을 받게 된다.

     

     

     중국과 베트남의 전통적 관문인 우의관(남관). 1407년 명나라의 10만 대군이 이 문을 넘는다.

     

    이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월남은 재차 중국에 점령되어야 했는데, 이때 영락제는 그 땅을 아예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킬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월남의 한화(漢化)를 서둘렀고 이것은 다시 저항을 불러왔다. 그 중심에 민족영웅 레러이(黎利, 1385-1433)가 등장했다. 레러이는 명나라군을 상대로 게릴라 전술을 전개하였던 바, 결국 1427년 명나라 유승 장군이 이끄는 10만 대군을 전멸시키며 베트남의 독립을 이끌어냈다.  

     

     

    후(後) 레 왕조 초대황제 레러이의 동상

     

    명나라군이 진격하면 산으로 도망 가 유격전을 펼치고, 지친 상대가 틈을 보이면 역습을 감행하는 레러이의 게릴라 전술은 이후 베트남군 전술의 FM(필드 메뉴얼)이 되었으니 20세기의 호치민 역시 그 같은 전술로써 프랑스와 미국을 굴복시켰고, 월맹 역시 1979년 자국을 쳐들어온 20만 중공군을 예비군만으로도 보기 좋게 물리쳤다.(당시 월맹 정규군은 캄보디아를 침공 중이었고, 떵샤오핑이 베트남을 공격한 명분도 동맹국인 캄보디아 침공에 대한 문책이었지만, 퇴역 베트콩들의 유격 전술에 고전하다 불과 29일 만에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채 물러가야만 했다)

     

     

    1979년 2월 중국인민해방군은 보병 29개 사단 20만 병력, 항공기 170대, 탱크 200여 대를 동원, 국경 26곳을 월경해 침공했으나 
    베트남 민병대에게 7만의 병력을 잃는 개망신을 당하고 허겁지겁 물러난다. 
    민병대 여성의 감시를 받는 중공군 포로. 베트남-중국 전쟁의 상징 같은 사진이다.  

     

    이 같은 역사적 전력(戰歷) 때문인지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에 별로 겁을 안 먹는다. 아울러 중국 또한 베트남을 만만히 보지 못하니, 지난 2014년 베트남이 자국의 배타적경제구역(EEZ)인 파라셀 군도(群島)에서 행해진 중국의 석유 시추에 반대해 일어난 반중 시위 당시 중국이 보여준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이때 격화된 시위에 베트남 주재 중국 공장들과 대사관 차량이 불탔음에도 중국 외교부의 반응은 그저 유감이란 것이었다.

     

    중국에 절절매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경이롭기까지한 중국의 태도이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니,  아무리 작은 체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세게 다구발을 보이면 큰 덩치의 놈들도 함부로 껍적대지 못하는 이치와도 같다. 현재의 국력으로 베트남이 중국과 맞짱을 뜬다면 베트남은 필패겠지만, 그만큼의 피해를 주겠다는 그들의 깡다구를 중국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대주의 언제까지 갈 것인가? I')

     

     

    파라셀 군도의 위치. 베트남은 황사군도(Huong sa Quan dao), 중국은 시사군도(四沙群島)라 부르는 이 분쟁지역은 현재 중국이 실효지배 중이다.  

     

    파라셀 군도가 있는 그 바다를 베트남은 남중국해라 부르지 않고 자기 식 대로 동해(East Sea)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영해에 중국 함선이 출현하면 작은 군함이라도 출동시켜 내쫓는다. 한번 해보려면 해보라는 식이다. 그래서 중국은 베트남이 주장하는 영해에 함부로 들어서지 못한다. 망신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깨에 힘을 주고 남중국해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중국임에도 베트남의 동해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중국은 2016년 필리핀이 제소한 국제해양법재판소 판결에서 그들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는 '남해구단선'이 법적 근거 없다는 공식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올해 4월 필리핀이 영해임을 주장하는 스프래틀리 군도에 7개의 인공섬을 완공시킨 후 자국의 영해임을 선포해 필리핀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파라셀 군도 인근 바다에서는 (인공섬 조성이라는)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세안 국가 중에서 베트남은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거른 적이 없는 까닭이다.  

     

     

     스프래틀리 군도 위치. 필리핀은 까뿔루안 응 깔라아얀(칼라얀 군도), 중국은 난사구도(南沙群島)라 부르는 이 지역은 필리핀이 영해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남해구단선'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에 조성한 인공섬. 미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사진

     

    그렇다면 저들과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 서해의 사정은 어떨까? 그간 시끄러운 일이 없었으니 무난히 공유하고 있는 걸까? 놀라지 마시라. 중국은 지난 2013년 이미 서해의 70% 이상을 점유했던 바, 동경 124도 서쪽 바다를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영해로 선포했다. 그리고 우리 군에 서쪽으로 124도를 넘지 않도록 경고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배는 124도 동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고 있다는 사실이니 이는 중국 어선뿐 아니라 군함들도 그러하다.

     

    게다가 중국은 또 얼마 전 우리 정부에 대해 우리 영해를 침범해  조업하는 자국(중국) 어선들을 심하게 단속하지 말라는 경고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옆집에 사는 덩치 크고 험상궂은 남자가 내 집 주방에 마음대로 들어와 밥을 꺼내 먹고 있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더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우리 아버지는 항의는커녕 애써 모른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우리집 가장(家長)은 그저 썩소만 짓는데, 이러다 안방마저 내어주게 될까 마냥 불안하기만 하다.  

     

     

    동경 124도의 위치  

    * 북한은 참지 않는다. 

     북한은 2012년 5월  서해 상에서 중국 선박 3척을 나포했다 

    북한은 2012년 5월 서해 상에서 중국 랴오닝성 선적의 소속 선박 3척을 나포했다가 풀어준 적이 있다. 1977년 북한이 선포한 배타적경제구역(EEZ)을 넘어 와 고기를 잡았다는 것인 나포 이유였다. 1962년 북한의 김일성과 중국의 주은래는 동경 124도 10분 6초를 양국 바다의 경계 기점으로 정했을 뿐 정확한 해양 경계선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 기점에서 내려 그은 선을 양국 간의 해양경계선으로 고집하다 한방 먹은 것이다. 그래도 북한은 중국과의 마찰을 무릅쓰고라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바다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 보인다. 

     

    * 우리는 참는다. 

    백령도 인근까지 접근해 간을 보고 간 중국 함정

    올해 1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비함이 동경 124도를 넘어 동쪽으로 들어왔다. 중국 함정이 동경 124도를 넘는 일은 거의 매일이나 이 날은 동경 124도에서 10㎞가량을 더 진입해 백령도에서 40㎞가량 떨어진 해역까지 접근했다. 우리 해군은 즉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던 전투함 1척을 현장으로 급파해 중국 경비함을 감시 견제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중국측에 항의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군은 위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원칙인 전략무기 잠수함까지 대놓고 노출했다. 지난해 8월, 중국 해군의 위안(元ㆍ039A)급 잠수함(3600t)이 동경 123~124도 사이 해역에서 물 밖으로 나와 항해를 하는 장면이 해군에 포착된 적이 있다. 이때도 중국측이 '서해는 중국의 내해(內海)'라는 메시지를 발산했다는 분석이 정보 당국에서 나왔었다. 아울러 서해 하늘에선 중국 군용기가 활개를 치고 있는데, 최근 3년간 서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중국 군용기가 60번 이상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지만, 방공식별구역에 외국 군용기가 들어가려면 해당 국가에 먼저 알리는 게 관례다. 하지만 중국은 그때그때 달라 어떤 경우엔 알리고 어떨 때는 알리지 않는데, 알리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한다. KADIZ는 동경 124도를 따라 그어진 선이니 우리는 이미 중국에 영공 주장에 암묵적 동의를 한 셈이나 다름 없는데 그나마도 침범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바다 위에 그어놓은 동경 124도의 국경은 중국측의 해상작전구역(AO) 경계선일 뿐 국제법으론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선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국경선으로 굳어질 판이다. 

     

    서해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039A 위안급 잠수함
    자주 출몰하는 Y-9 정찰기
    베트남 동해의 하롱베이와 서해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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