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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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고인돌의 본래 위치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9. 2. 23:57
인천 내외각을 걷다 보면 '정말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되니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역사유적 때문이다. 때로는 선사시대의 유적도 눈에 띄는데, 대표적인 것은 역시 고인돌이다.(선사와 역사의 구분은 문자의 사용 유무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강화도와 영종도의 고인돌을 제외하고서라도 인천의 고인돌은 상당했으리라는 짐작이 드니, 내륙에서는 주안동, 문학동, 대곡동, 동양동 등에서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인천 고인돌은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처럼 굄돌이 명확한 북방식(탁자식) 고인돌이 대종을 이루며 크기도 큰 편이다. 일례로 문학동 고인돌은 덮개돌의 길이 3.4m, 너비 2.2m로,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길이 7.1, 너비 5.5m)의 반 정도에 이른다. 참고로 부근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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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센트 상사 영화의 시작 '담손이방앗간'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8. 28. 22:14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인 월터 데이비스 타운센드(Walter Davis Townsend, 1856~1918)는 인천에 진출한 외국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의 회사 '타운센드(Townsendc. Co.)'는 인천에서는 한자 음차인 '타운선(陀雲仙)'이라고 불렸으며 독일의 '세창양행'과 함께 외국계 회사의 쌍두마차를 형성했다. 타운센트의 사옥은 현 중구 신포로 391번지에 있었는데, 인천 경찰서 앞 지금의 크라운 볼링장 일대의 금싸라기 땅이 모두 타운센트의 소유였다. 미국 태생의 타운센트는 1878년, 23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가 도쿄의 미국무역상사 모오스에 취직했다. 그리고 입사 불과 1년 만에 고베지점 설립 및 운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고,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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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기억력상실을 예방할 수 있는 수도국산 시간여행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8. 28. 00:35
최근 개봉된 영화 '범죄도시 3', '인디아나존스', '미션 임파서블'을 연속해서 관람했으나 '오펜하이머'에서 제동이 걸렸다. '오펜하이머'가 고공행진 중인 지금도 볼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는데,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서'이다. 원자탄이 역사상의 가장 극적이며 위력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극적일 것 같지는 않다. 극적이지 않는 영화는 거의 졸다 나온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앞서 '뉴멕시코 앨라모고도에서 비키니 섬까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만일 내가 '오펜하이머'를 본다면 그것은 필시 '메멘토'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메멘토는 2001년에 개봉한 영화로 '오펜하이머'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만든 14개 무비 가운데 하나이다. 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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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천일은행(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8. 17. 23:51
앞서 말한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터인 중구 해안동 공영주차장에서 KT항동지점 방향 대각선 쪽에 대한천일은행(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이 있었다. 지금의 인천문화재단 자리이다. 이 자리는 전에는 바다였던 곳으로 일본이 조계지를 넓히려 매립한 땅이다. 여기뿐 아니라 길 건너편에 있는 미두취인소도 바다였는데, 아래 사진은 당시 매립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뒤에 붉은 점을 찍은 곳이 미두취인소이고, 바로 앞 큰 건물이 대한천일은행 인천지점이다. * 인천 미두취인소에 대해서는 '인천 용동 권번 골목 - 일제시대 선물 투기열풍과 맞물렸던 해어화(解語花)의 영화(榮華)'에서 설명한 바 있다. ▼ 미두취인소에 대해서는 인천 용동 권번 골목 - 일제시대의 선물 투기열풍과 맞물렸던 해어화(解語花)의 영화(榮華) 지금의 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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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관거리에서 내몰린 중국인과 의선당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8. 15. 00:57
우리에게는 분명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일본인의 상술에 대해 부러워하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때 서점가에서는 아래 마쓰시다 고노스케(파나소닉 창업자) 류의 일본판 경영서적들이 범람을 했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구한말에는 다분히 그와 같지 않았으니, 앞서도 말한 혼마 규스케의 에는 다음과 같은 놀랍고도 흥미로운 내용이 쓰여 있다. * 혼마 규스케(本間九介, 1869~1919)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으로 '정한론(征韓論)' 쪽의 인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반도와 대륙진출을 교두보를 찾기 위한 일환으로써 1893년 조선에 건너와 전국을 돌며 견문하고 정탐했으며, 그에 대한 것을 일본 에 연재했다. 는 그 기사들을 모아 간행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팔도 가는 곳마다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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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 근대역사문화회랑에서 만난 막강 화상(華商)의 흔적(I)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8. 7. 08:27
다시 인천역 앞에 섰다. 그리고 곧장 길을 건너가 인천 차이나타운의 랜드마크인 패루(牌樓)를 향해 들어갔다. 이번에는 목적이 있었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 다시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목적은 구한말 인천의 상권 제패를 넘어 조선의 경제를 통째로 쥐고 흔들었던 화상(華商)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다. 옛 청국 조계지에 세워졌던 청나라 건물들은 기본이 벽돌로 지어져 목조인 일본식 건물에 비해 훨씬 튼튼했을 터임에도 이상하게 남아 있는 옛 건물들이 드물다. 물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이겼다면 사정은 달라졌겠지만. 위의 사진들은 그나마 현재에도 볼 수 있는 옛 거리 모습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인천에 자리한 화교의 기원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고종의 청병(請兵)으로 입국한 청나라 오장경이 청군의 보급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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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묘도와 만석동 괭이부리말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20. 00:41
인천시 만석동 앞바다에 있었다는 섬 묘도(猫島)는 고양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묘도뿐 아니라 근방의 괭이부리 마을도 고양이로부터 유래되었다. 특별히 알려질 이유가 없었던 가난한 만석동 괭이부리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작가 김중미는 에서 마을 이름의 유래를 분명 그렇게 밝혔다. 그래서 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도 괭이부리를 괭이갈매기와 같은 조류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긴 여기는 고양이보다 갈매기가 더 많다. 하지만 지금 묘도는 없어졌고 고양이도 그리 흔치 않다. 없어진 것만은 묘도뿐이 아니니 그 섬에서 해안을 지키던 묘도포대와 일대의 드넓은 갯벌도 사라졌다. 묘도포대는 1879년 일본이 인천의 개항을 압박해올 무렵, 화도진지 및 소래 포구의 장도포대(獐島砲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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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고노의 별장이던 인천시민애(愛) 집의 석탑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11. 01:11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는 야외전시장의 이름으로 많은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물 2호인 보신각종도 그곳에 있는데, 그 종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석물로서 염거화상탑(국보 104호),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보물 190호),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보물 362호), 대경대사 현기탑비(보물 361호),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365호), 홍법국사탑(국보 102호)과 탑비(보물 399호) 외 여러 석탑 등 쟁쟁한 문화재가 즐비하다. 석물들의 대부분은 과거 경복궁 증앙박물관 시절의 야외전시장 것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인데, 뿌리를 찾자면 물론 고향은 다 다르다. 하지만 그 석물들이 고향을 떠나 오게 된 사연은 거의 비슷하니 1915년 조선총독부가 조선 지배 5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에서 개최한 조선물산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