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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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대 이권을 주물렀던 선교사 알렌과 우각현 별장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8. 07:34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말했듯 호러스 알렌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앞서 입국한(1884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개신교 한국 전래의 효시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는 인물이다. 당시는 조선이 외국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금하고 있던 때라 그는 공식적으로는 선교사가 아닌 미공사관의 직원 신분으로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고종도 그를 경계해 초대 미국공사 루시어트 푸트에게 알렌이 정말로 선교사가 아닌가를 물었을 정도였는데, 푸트는 "NO. 그는 정말로 공사관의 무급 의사(Physician to the Legation with No pay)입니다"라는 준비된 답변으로 고종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알렌은 입국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의심에서 벗어나 오히려 고종과 민왕후의 사랑을 담뿍 받는 존재가 되니, 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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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VI) ㅡ 인천시립박물관의 중국 종과 강화 전등사종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6. 07:40
인천시립박물관 옥외에는 특이하게도 중국제 범종 3점이 전시돼 있다. 이 범종들은 제작 시기가 송(宋)·원(元)·명(明)대로 각각 다르지만, 몸통에 띠를 두른 듯한 돋을 선과 꼭대기의 쌍룡 용뉴(종을 매다는 부분), 그리고 아래로는 파상형(波狀形) 치마형상 등 전형적인 중국종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누가 봐도 중국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종들이 왜 한국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중 송나라 것과 원나라 것은 초대 관장 이경성이 1946년 미군 트럭을 빌려 부평육군조병창에 방치됐던 종을 싣고 온 것이다. 조병창은 인천 부평구 부평1동과 산곡동 아파트단지 자리에 있던 일제의 군수기지로서, 무기 제조 공장이 있었다. 강화 전등사의 종도 이곳에서 가져온 것으로서, 해방 후 전등사 주지스님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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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열차 III ㅡ 대동여지도 속 송도와 아암도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2. 19:13
앞서 송도(松島)라는 지명이 청일전쟁 당시 인천항에 정박했던 일본 순양함 마츠시마로부터 유래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인천 송도 신도시와 일본 순양함 마츠시마호') 그리고 순양함 마츠시마의 이름은 일본의 3대 절경으로 유명한 미야기현의 마츠시마(松島)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미야기현의 마츠시마 해변의 풍광은 인천 송도 내(內)의 아암도 해변공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아무튼 송도의 지명 유래는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과거 인천에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차용된 왜식 지명이 숱했다. 이를 테면 삼립정(三笠町, 삼산동) · 천간정(淺間町, 가좌동) · 천대전정(千代田町, 가정동) · 부도정(敷島町, 선화동) ·운양정(雲揚町, 백석동) · 낭속정(浪速町, 서창동) ·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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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열차 II ㅡ 마지막 남은 역사(驛舍) 송도역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0. 17:16
수원~인천 간 협궤열차로 운행되던 수인선은 일제가 서해안 소금 등을 운송할 목적으로 만든 철도로서, 1937년부터 1995년까지 약 50년간 운행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라진 철도가 지금도 회자됨은 그것이 보기 드문 협궤열차(궤간 762mm)로서, 괜한 귀여움과 낭만이 동반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기존 궤간인 1453mm를 벗어나 협궤로 만들어진 이유는 사실 낭만과는 거리가 있으니 그저 신속·저렴한 쪽을 택해 가설했음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수인선은 '꼬마열차'로서 사랑받았고, 그러한 만큼 그것이 사라질 때는 아쉬움도 컸다. 그 열차 구간이 근자 들어 부분별 공사로서 단계별 개통했고,(2012년 6월 오이도~송도 개통) 2020년 9월 12일 옛 수인선 구간 전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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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열차 추억 여행 I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18. 19:28
오늘 말하려는 수인선은 수원~인천간을 왕복하던 열차로 1937년 첫 운행 이래 1995년까지 약 50년을 달리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열차이다. 구 수인선은 열차의 폭이 좁은 이른바 협궤열차로서 '꼬마열차'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당시 수인선은 수원~여주간의 수려선과 더불어 국내 유이(有二)의 협궤열차였으며, 일찍 폐선된 수려선과 달리 지난 50년간 꾸준히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동안 지역민의 애환과 추억과 사랑이 유난하였으나 지금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내 기억으로는) 인천 수인선 종착역 근방의 선로는 지난 2016년까지도 존재했으나 현재는 전부 철거되었다. 협궤열차는 양 선로의 궤간(軌間)이 좁다는 뜻이다. 협궤열차의 궤간은 762mm로 표준궤간인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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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본원사와 서본원사 & 신흥동 정미소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12. 06:56
인천 답동 일대가 일제강점기에 데라마찌(寺町)라고 불렸다는 얘기는 앞서 언급한 적이 있다. 1977년 신포동에 편입되며 법정동으로만 존재하는 답동은 지금의 신포동, 신흥동, 율목동에 일대에 두루 걸쳐 있었는데, 이곳은 과거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쉽게 말하면 뒤차로 온 일본인들이니, 먼저 온 일본인들은 개항장 인근 조계지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래서 자리도 부족하고 땅값 또한 올라 있는 상태였으므로 뒤차로 온 일본인들은 축현역(지금의 동인천역)에서 가까운 답동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즈음하여 이곳에 일본 사찰들도 대거 들어섰다. 동본원사, 묘각사, 인천사, 명조사, 서본원사, 화엄사(지금의 해광사) 등으로서, 이중 가장 먼저 들어선 절은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 오타니(大谷)파가 설립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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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장 거리를 거닐었을 또 다른 외국인들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3. 06:05
인천광역시 부두 인근 옛 개항장 거리는 그야말로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거리와 골목골목에 잘 알려진 역사와 그렇지 않은 과거들이 얼기설기 엮어 이어져 있다. 우선 인천 역사 여행의 시발점인 인천역 자체가 그러하니, 이곳은 대한민국의 모든 철도역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점역이자 한국 철도의 탄생역이기도 하다. 인천역은 1899년 미국인 모스(J. R. Morse)에 의해 개통된 경인선의 종착역으로서 9월 18일 개통과 함께 업무가 개시된 곳이다. 지금의 역사(驛舍)는 1960년 9월 17일에 완공된 것으로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인천역에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옛 철로를 따라 만석동 쪽으로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완만한 구릉지대, 지금의 지번으로 북성동 1가 1번지(제물량로 335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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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가족공원묘지에 묻힌 다양한 사연의 외국인들 I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5. 31. 01:23
인천은 구한말 최초로 외국인 공동묘지가 조성된 곳으로, 그 첫 장소는 바다가 보이는 북성동 언덕이었다. 지금의 지번으로는 북성동 1가 1번지,(제물량로 335번길 13) 현재의 지형으로 보자면 송월동에서 만석동으로 이어지는 육교 너머 경인선 철길이 보이는 구릉지대이다. 현재 이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옛 자취는 전혀 찾을 길 없고, 공동묘지의 흔적 남기기를 꺼린 탓인지 표석도 없어 그저 잊힌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 구한말 이래 조성된 약 8천 평의 외국인 공동묘지가 존치되었더라면 꽤 유명한 명소가 될 뻔했다. 하지만 묘원은 진즉에 훼손되었으니 1941년 5천 평 정도의 땅이 철도 부지로 수용당하며 침탈받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시에는 인민군들의 직접적인 파괴 행위와 인천상륙 작전 때의 포격으로 인한 손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