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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인선 협궤열차 III ㅡ 대동여지도 속 송도와 아암도
    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2. 19:13

     
    앞서 송도(松島)라는 지명이 청일전쟁 당시 인천항에 정박했던 일본 순양함 마츠시마로부터 유래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인천 송도 신도시와 일본 순양함 마츠시마호') 그리고 순양함 마츠시마의 이름은 일본의 3대 절경으로 유명한 미야기현의 마츠시마(松島)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미야기현의 마츠시마 해변의 풍광은 인천 송도 내(內)의 아암도 해변공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아무튼 송도의 지명 유래는 그러하다.  

     
     

    마츠시마의 일출 / 마츠시마는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만 연안에 산재한 크고 작은 260여 개의 섬들의 총칭이다.
    영문판 위키피아에 실린 마츠시마호의 사진

     

    뿐만 아니라 과거 인천에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차용된 왜식 지명이 숱했다. 이를 테면 삼립정(三笠町, 삼산동) · 천간정(淺間町, 가좌동) · 천대전정(千代田町, 가정동) · 부도정(敷島町, 선화동) ·운양정(雲揚町, 백석동) · 낭속정(浪速町, 서창동) · 미생정(彌生町, 선린동) 등 군함 이름의 가진 동명(洞名)이 무려 14개였고, 그 외에도 육군대장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나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딴 천상정(川上町, 청천동)과 이등정(伊藤町, 구산동) 등 인명에서 비롯된 동네 이름도 허다했다.

     
     

    일본 전함 미가사(三笠)호
    장갑순양함 아사마(淺間)호

     

    하지만 광복 후 거의가 개명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송도는 지금껏 남아 더욱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최근 건설된 송도  국제신도시로 인해) 그리고 송도라는 지명은 또 지난 2020년 9월 12일 옛 수인선 구간이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으로 완전 개통되며 빼박의 지명이 되었는데, 그러면서 다시 일제 잔재 논란이 일었다.
     
    이에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은 일제 잔재 청산을 내걸고 송도에 대한 지명개정운동을 벌였고, 해당 연수구의회 등에서 명칭 변경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무엇은 없었다. 송도는 워낙에 오랜 기간 대중적으로 인식된 지명이라 변경이 쉽지 않다는 것이 사실상의 결론이지만, 그것이 대한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일익을 한 순양함 마츠시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못내 찝찝했다. (마츠시마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발군의 활약을 했다)

    그러던 중 최근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의 인천부 지도에 송도라는 명칭이 출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찾아보니 과연 부래(孚萊)도, 송(松)도, 호(虎)도, 파라도, 장도, 난지도, 기도, 정자도 등의 섬이 표시되어 있었다. 1936년 송도란 지명이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기 전부터 이 일대가 송도로 불려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설사 송도로 불려지지 않았더라도 송도라는 지명이 확인된 것만도 큰 수확이다. 그간 시민단체에서 '조선시대 고지도나 읍지를 찾아보아도 인천 지역의 지명에 송도란 지명은 없다'고 주장해 온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대동여지도 인천부 지도 속의 송도 (화살표)
    대동여지도 판본 이음 / 김정호가 1861년에 만든 길이 7m, 폭 3m의 목판본 조선 전도(全圖)로, 축척은 16만분의 1이다. 전국의 남북을 22단, 동서를 19판으로 구분해 떼고 붙일 수 있도록 절첩식으로 만들었으며 낱권으로는 22권이다.


    겸사겸사 현지답사에 나섰다. 현지에서 무엇을 찾아내겠다는 것보다는 그저 그 지역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는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앞서, 1972년 인천시가 유원지 조성을 위해 송도 일대 4만3천554㎡를 매립해 조성한 인공해변과, 그 유원지가 2011년 폐장된 이야기, 그리고 그곳이 지금은 수출용 중고자동차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막상 가서 보면 그 넓은 주차장의 황량함과 중고차량에 할 말을 상실한다. 정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흔적만 남은 아암도는 아예 출입이 폐쇄되어 들어가 볼 수조차 없다. 송도 해수욕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 섬은 6,058㎡(1,832평)의 작은 크기였지만 '바닷가 끝섬'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는데, 신기하게도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며 유원지 쪽문에서부터 아암도까지 700m 길이 열렸다. 이에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며 들뜬 마음으로 아암도에 다다랐다. 그런데 와서 보니 그와 같은 과거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형편이다. 
     
     

    1930년대의 송도와 아암도(●)
    70년대 송도해수욕장과 아암도 항공사진
    바닷길이 열리면 이렇게 사람들이 걸어갔다.
    1986년 7월 송도에서 본 아암도 / 해변 의자에 쓰여 있는 '캪틴큐'는 당시 유행하던 술이다.
    캪틴큐 / 1980년 1월 롯데주조가 출시한 럼(Rum)주 계열의 저가 양주로, 개인적으로는 숙취가 심해 싫어했고 주위 사람 대부분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2015년까지 35년간의 긴 생명력을 이어갔는데, 삐끼가 데려오는 만취 손님에게 제공되는 가짜 고급양주 제조용으로 쓰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의 캪틴큐 광고
    모세의 기적이 사라진 이유 / 과거의 바다가 지금은 도심 속 워터프론트 아암호수가 되었다.
    아암도의 현재 위치

     
    지금 아암도 앞 푸른 바다는 없어졌고, 아암도 또한 섬이 아니라 육지에 붙은 땅이지만 곶처럼 튀어나와 있어 언뜻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섬에 갈 수가 없다. 상수관 공사라는 표면상의 이유로 섬의 출입을 제한했기 때문이다.(아암도 해안공원이 조성되었던 지난 2010년대에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모세의 기적도 진작에 사라졌고, 설사 있다고 해도 바닷길을 건너 섬으로 가기는 불가능하니 아암도 앞으로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왕복4차로 자동차도로가 가로질러 있고, 요행히 길을 건넜다 해도 바리케이드와 철문이라는 2, 3차 관문이 가로막는다. 
     
     

    목숨 걸고 건너볼껴? / 앞에 보이는 숲이 아암도임.
    한참 걸어 통로를 찾았어도 출입은 불가능하다. / 펜스 끝으로 보이는 섬이 아암도
    과거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던 길에는 시커먼 생활 폐수가 흐른다. / 왼쪽이 옛 해수욕장이 있던 주차장이고 오른쪽은 아파트를 지으려는지 부영건설에서 긴 가림막을 설치했다.

     
    하긴 지난 1950~90년대에도 이 섬은 편한 곳이 아니었다. 당시 관광객들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이곳에는 해안초소가 있어 군인들이 상주하며 일대를 경비했다. 그리고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을 제한했는데, 미처 안내문을 보지 못한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이밀라치면 총을 든 군인들이 어느새 달려와 제재시키곤 했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철조망도 사방에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1961년 북한 공작원 3명이 침투했다가 2명이 사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나머지 1명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199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26인조 강릉 무장공비 사건처럼 1명은 북으로 탈출한 것인지.... 그 강릉 무장공비들로 인해 전사 12명,(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인한 전사자 1명 포함) 부상 27명이라는 아군 피해가 발생했고, 민간인 4명, 경찰 1명, 예비군 1명도 사망했다. 경계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게 해 준 이 사건 이후에도 2012년 이른바 노크 귀순이라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개인적으로 군의 발표는 모두 믿지 않는다. 최근에 성추행으로 자살한 여군 오모 대위 사건까지.... 군의 발표는 도무지 진실성이 없다. 한편으로는 특성상 진실을 은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후 대책을 보자면 발표의 진성성이 원천적으로 의심된다. 그래서 원천적으로 진실할 수 없는 군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돌아오는 길, 지금은 송도신도시에 가로막힌 바다 아닌 바다를 보며 아암도 앞바다에 저 초고층 첨단건물들이 들어서고 다리(인천대교)가 놓이리라고 고산자 김정호는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해보았다. 김정호는커녕 30년 전 이 앞바다를 지키던 초병들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아무튼 억지로 사진 몇 장을 찍어왔다. 다음에는 진짜 수인선 선로가 남아 있다는 고잔역으로 가볼 생각이다. 
     
    가을에 그 작고 낡은 기차는 어차피 노을 녘의 시간대를 달리게 되어 있었다. 서해안의 노을은 어두운 보랏빛으로 오래 물들어 있고, 나문재의 선홍색 빛깔이 황량한 갯가를 뒤덮고 있다. ㅡ 윤후명의 '협궤열차' 중에서.
     
     

    아암도 풍경
    인천시립박물관의 수인선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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