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기억력상실을 예방할 수 있는 수도국산 시간여행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8. 28. 00:35
최근 개봉된 영화 '범죄도시 3', '인디아나존스', '미션 임파서블'을 연속해서 관람했으나 '오펜하이머'에서 제동이 걸렸다. '오펜하이머'가 고공행진 중인 지금도 볼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는데,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서'이다. 원자탄이 역사상의 가장 극적이며 위력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극적일 것 같지는 않다. 극적이지 않는 영화는 거의 졸다 나온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앞서 '뉴멕시코 앨라모고도에서 비키니 섬까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만일 내가 '오펜하이머'를 본다면 그것은 필시 '메멘토'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메멘토는 2001년에 개봉한 영화로 '오펜하이머'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만든 14개 무비 가운데 하나이다. 혹자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최고작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2016년 BBC가 「21세기의 위대한 영화 25」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세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영화를 생각하자면 대단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스토리는 아내가 살해당한 후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사진, 메모, 문신으로 남긴 기록에 의지해 범인을 쫓아 단죄하는 것으로 장르는 당연히 범죄 스릴러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영화의 구성을 칼라와 흑백으로 반분(半分)했는데, 칼라 화면은 역순으로, 흑백 화면은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관객에게 혼란을 주면서도 이 같은 구성을 시도한 이유 주인공 레너드가 기억을 회복해 내려는 처절한 노력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컬러와 흑백의 화면 속에서 기억에 대한 진실과 거짓이 싸운다. 관객은 그 처절한 싸움에 끌려가다 충격적인 반전을 맞는다. 무언가 둔기 같은 것에 세게 엊어맞은 느낌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동생 조너선이 쓴 단편 소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영화화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라틴어라고 하는데, 감독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보다는 '기억'이었을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죽음보다 더 나쁜 상황일 수 있다. 아니 실제로도 그러하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치매와 같은 상황이 오면 사람답게 죽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인 자살마저 결행할 수가 없다. 치매와 건망증은 원인이 따로 존재하는 완전 별개의 질환이라 하는데 기억상실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치매와 건망증은 심각한 질환이기도 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서 발생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까닭에 노력함이 중요한데, 치유법이나 예방법으로 소개된 것을 보면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절대적이다. 이를 테면 차를 운전할 때 내비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의 기억에 의지해 길을 가려는 노력 등이 해당된다. 두뇌가 아무 생각 없이 정체되는 것을 방지하고 굴러가게 만들려는 일환일 터이다.
하지만 한두 번 간 길에 내비를 켜지 않고 운전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래서 조금 편하게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오래된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반추하는 일이다. 가까운 과거를 생각해 내는 노력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주 행복하게 산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까운 과거는 대개 괴로울 터, 오히려 생각을 안 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현실은 쓰고 추억은 달다고들 하지만, 추억도 추억 나름이다.
그런데 어릴 때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스라하고 간직하고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사형수의 기억에도 마찬가지이니 오래전 탐 존스라는 가수가 부른 '고향의 푸른 잔디'(Green Green Grass Of Home)라는 노래에서, 날이 밝으면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사형수가 꿈꾸는 것도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의 푸른잔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살던 낡은 집과 동네 오크나무, 오솔길을 함께 걸었던 고향친구 금발머리 메리다. (제목과 달리 가사는 사형수가 어릴 적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The old hometown looks the same
As I step down from the train
& there to meet me is my mama and papa
Down the road I look and there runs Mary
Hair of gold and lips like cherries
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Yes, they'll all come to meet me
Arms reaching, smiling sweetly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The old house is still standing
Though the paint is cracked and dry
And there's that old oak tree that I used to play on
Down the lane, I walk with my sweet
Mary Hair of gold and lips like cherries
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Then I awake and look around me
At four grey walls that surround me
And I realize, yes, I was only dreaming
For there's a guard and there's a sad old padre
On and on, we'll walk at daybreak
Again, I'll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Yes, they'll all come to see me. In the shade of that old oak tree
As they lay me neat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인천광역시 동구 수도국산에 있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근현대 생활사 박물관으로 1960~1970년대 달동네 서민들의 생활 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곳이다. 박물관의 위치도 예전 달동네가 있던 산비탈 꼭대기에 위치하는데, 우연찮게도 수도국산이라는 지명은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성동구 금호동에도 존재한다. 수도국(水道局)은 상·하수도 물을 관리했던 관청의 이름으로 아직도 종종 그렇게 불려진다. 말하자면 상수도물을 공급하던 배수지가 있던 산이 수도국산이었다.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옛 수도국 시설이 있던 송현 근린공원 내에 위치하며 2005년 10월에 개관하였다. 박물관 내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가 오밀조밀 전시돼 있는데, 터치스크린을 통해 1960~1970년대 달동네 주민들의 생활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래의 재현된 과거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방(ROOM)이다. 방의 벽지가 특히 사실감을 주는 이유를 알아보니 2005년 송림동 재개발현장에서 수거해 온 벽지를 재사용했다고 한다.
비단 벽지뿐만이 아니더라도(실크벽지라는 뜻이 아님^^) 연탄재에 꽂힌 연탄집게, 함석 대야 속의 빨래와 빨래판, 책상 위의 자명종 시계, 골목 담벼락에 붙은 영화 포스터와 반공방첩 구호, 수배자의 얼굴과 개조심 문구 등이 과거로 가려는 시간여행자의 발길을 돕는다. 그 시간여행의 티켓은 놀랍게도 1000원에 불과하다.
'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미추홀구 고인돌의 본래 위치 (2) 2023.09.02 타운센트 상사 영화의 시작 '담손이방앗간' (1) 2023.08.28 대한천일은행(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 (2) 2023.08.17 청관거리에서 내몰린 중국인과 의선당 (0) 2023.08.15 개항장 근대역사문화회랑에서 만난 막강 화상(華商)의 흔적(I) (0) 202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