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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수리성운 '창조의 기둥'과 티코 브라헤
    거꾸로 읽는 천문학개론 2022. 10. 31. 07:53

     

    올 7월 11일 '스테판의 5중주(Stephan's Quintet)'를 비롯한 일련의 사진을 보내온 이래 엊그제 두 번째 사진을 보게 되었다. 작년 12월 25일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이야기로, 지난 28일(현지시간) 유럽우주국(ESA)에서 공개한 사진은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의 새 이미지다. 

     

     

    '창조의 기둥'
    중적외선으로 촬영한 '창조의 기둥' 두 번째 이미지

     

    ‘창조의 기둥’은 우주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성운으로 알려진 곳으로, 지구로부터 약 7000광년 떨어진 독수리성운의 성간가스와 성간먼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암흑성운이다. '창조의 기둥'은 과거 허블 우주망원경에 의해 몇 차례 촬영된 적이 있어, 그것이 차가운 수소분자와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그 먼지 속에서 새로운 아기 별들이 무수히 탄생하는데, 동시에 질량을 가진 가스와 먼지덩어리가 형성되며 자체 중력에 의해 붕괴되기도 하고, 주변의 항성들이 방출하는 자외선에 의한 광증발로 침식되기도 한다. ‘창조의 기둥’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여졌다. 제임스 웹의 사진에서는 그것을 보다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왼쪽이 1995년 4월 1일 허블 우주망원경이 잡은 모습이고 오른쪽이 이번의 새로운 이미지다.

     

    감상을 위해 그간 촬영된 독수리 성운 사진들을 모아 줌(ZOOM)해보았다.

     

    독수리성운
    독수리성운이라고 불리는 이유
    '창조의 기둥' 위치
    가장 왼쪽의 기둥은 그 길이가 무려 4광년이 넘는다 / 기둥 꼭대기의 조그만 손가락 모양 돌출부 하나가 우리 태양계 전체보다도 크다. (태양계의 약 3.5배)
    제임스 웹 사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본 별의 탄생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본 먼지덩어리의 붕괴 /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얼마나 선명한지 비교된다.
    역시 제임스 웹이 짱이야! ^^
    그밖의 세부 사진

     

    위의 사진들을 보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전송 사진을 기다리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사진은 지난 7월 11일 보낸 온 후 100일이나 넘어 전송된 것이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어떨 때는 직접 나가 아래의 티고 브라헤처럼 육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년 )의 동상
    체코 프라하에 있는 브라헤와 제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동상 / 덴마크인인 브라헤의 동상이 프라하에 있는 것은 그가 신성로마제국으로 옮겨 와 체코인 케플러를 제자로 삼았기 때문.

     

    티코 브라헤는 덴마크의 천문학자로서,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이지만 천문학자로서는 발군의 족적을 남겼으니 777개 이상 되는 항성의 정확한 위치를 관측해내고 도표를 작성한사람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최초로 망원경을 발명해 천체를 관측한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년)브라헤보다 약간 뒷세대다. (☞ '천체망원경의 원리와 역사 I')

     

    그의 관측 도표는 훗날 여러 가지 천문학적 발견을 가능하게 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케플러의 업적은 사실은 대부분 브라헤의 것이다. 티코 브라헤는 말년에 이르러 제자 케플러에게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관측자료와 행성 궤도에 관한 도표를 넘겨주었다. 케플러는 그 자료들을 분석하여 행성 궤도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낸 이른바 케플러 법칙을 수립하게 되는데, 티코 브라헤는 이미 이심률을 알았기에 적어도 케플러 1법칙(타원 궤도 법칙)과 2법칙(면적 속도 일정 법칙)은 브라헤가 만든 것이 된다.

     

     

    티코 브라헤의 놀라운 행성 궤도 개념

     

    케플러 1법칙은 '행성은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것이다. 이 타원 궤도가 만드는 것이 이심률로서, 이는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수식(數式)이 더 이해가 쉽다. 즉 타원의 긴 반지름을 a, 짧은 반지름을 b라 할 때 a2+b2/α를 이심률이라 한다. 이심률은 두 초점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작아지고, 멀수록 커진다. 태양계 행성 중에서는 수성의 이심률이 가장 크고(0.21) 해왕성이 가장 작다.(0.01)

     

    타원 궤도 법칙

     

    케플러 제2법칙은 더 쉽다. '행성과 태양을 연결한 직선이 같은 시간 동안에 훑고 지나가는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행성의 속도는 태양과 가까워지면 공전 속도가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즉 행성은 공전 궤도상 위치에 따라 공전 속도가 달라지게 되는 것인데, 천문학에서는 근일점 부근에서 빠르고 원일점 부근에서 느리다고 설명한다. 아무튼 그러해서, 시간별 면적을 계산해보면 공전 속도가 빠를 때나 느릴 때나 훑고 지나온 면적은 동일하다.

     

    면적 속도 일정 법칙

     

    케플러 제3법칙은 '조화의 법칙'으로, 행성과 행성의 공전 주기(P)의 제곱은 공전 궤도 장반경(a)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인데, 

    이는 케플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맞다. 그러므로 제3법칙은 케플러를 말할 기회가 오면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은 그는 왜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가(위 동상에서) 만을 말하고 가자. 케플러는 어릴 적 부모의 케어가 소홀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한마디로 먹고 살기 바빴다는 야그) 게다가 어릴 적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 시력이 많이 상했다. 이에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관측하는 쪽은 진작에 포기하고 수리(數理) 쪽에 촛점을 맞추었던 바, 1, 2법칙을 토대로 '조화의 법칙'을 완성함으로써 그간 천문학의 대세였던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을 완전히 깨버리게 된다. 

     

    반면 티코 브라헤는 덴마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완전 금수저였다. 그래서 의당 법학이나 정치학 같은 것을 공부해야 했지만 15살 때 우연히 개기일식을 목격한 이후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고위 관료인 집안의  전통을 잇기 위해 우선은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그러면서 뒷구멍으로는 천문학을 연구하여 위와 같은 업적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그의 업적 중의 다른 위대한 몇 가지는 초신성을 발견한 일과 혜성의 신비를 푼 일이었다. 브라헤는 1572년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작렬하는 초신성을 발견해 별의 폭발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혜성이 지구 대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주 먼 곳에서 날아오는 천체라는 가설을 내세웠는데, 그의 가설은 100년이 지난 후 에드워드 핼리(1656-1742)에 의하여 증명됐다. (앞서 말한 대로 그나마 사후에. ☞ '혜성에 관한 잡담 I'

     

     

    브라헤가 1573년 발간한 <새로운 별 (De Nova Stella)>
    브라헤는1572년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별(De Nova Stella)을 기원전 125년경 히파르쿠스가 보았다는 천체(초신성)와 비교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성(nova)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아무튼 그의 초신성 이론은 호사가였던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2세의 관심을 끌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이 초신성은 무려 13 개월 동안이나 빛을 발했다) 그리하여 그가 기증한  벤(Hven) 섬에 우라니보르그 천문대를 비롯한 2곳의 천문대를 건설하고(망원경도 없이?) 20년 간 조수들과 함께 방대한 관측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하고 크리스티안 4세 즉위 후 지원이 축소되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수학관으로 고빙되는 쪽을 택했다. 이후 프라하로 이주한 그는 천문학에 관한 한 제왕적 권위를 누리며 연구를 지속했다.

     

     

    그림 같은 벤 섬 / 크기는 7.2㎢로 작으며 지금은 스웨덴 영토임.
    벤 섬 선착장
    1663년판 Blaeu Atlas에 실린 벤 섬의 지도
    그는 망원경은 없었지만 고대의 사분의(四分儀, quadrant)를 개량한 이와 같은 관측기구들을 갖추고 있었다.
    요하네스 허벨리우스의 사분의

     

    그는 1587년, 드디어 자신의 대표작 <새로운 천문학 입문>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지동설도 천동설도 아닌 제3의 우주모형을 선보였던 바, 어쩌면 교황의 간섭을 피하기 위한 수작인지도 몰랐다. 그의 학설에서는 태양은 우주의 중심인 지구를 돌고, 다른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별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개념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기존관념인 수정구체설(행성과 별은 투명한 수정천구에 붙어 있다는 고대로부터의 학설)을 완죤 부정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의 이론에서 별은 공중에 떠 있었고, 행성은 각자의 궤도를 가지고 공중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이렇게 획기적인 주장을 하면, 꼭 딴지를 거는 새끼들이 예전에도 존재한 듯하다. 그런 새끼들은 절대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근성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끝까지 깐죽대며 따리를 붙는다. 그래서 만나서 한판 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티코 브라헤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말로 '현피'를 떴다. 당시의 방식대로 각자 칼을 들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만 코가 잘리고 말았다. 결투 도중 칼을 잽싸게 피했지만 높은 코까지는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싸움은 그것으로 끝났지만 브라헤는 평생 가짜 코를 붙이고 살아아 했다. (현피는 안 하는 게 현명한 듯!) 그런데 그보다 더 불행했던 것은 그가 방광이 터져 죽은 일이다. (내 생각에는 방광염에 걸려 죽었을 것 같은데 거의가 방광이 터져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나마 점잖게 그려진 티코 브라헤의 코
    극단적으로 표현된 티코 브라헤의 코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에게 고빙되어 독일로 왔다. 따라서 그의 후원이 절대적이었으니 만일 지원금이 끊긴다면 그야말로 개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루돌프 2세가 마련한 만찬에 초대되었는데 혹시라도 황제의 눈밖에 날까,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그로 인해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좋은 말로 '예의를 지키려다 죽은 귀족'으로 치부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연구비를 지키기 위해 죽은 학자이다.

     

    육안 관측을 강조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차라리 그 시절이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은 웬만한 개인 천체망원경으로는 별 보기가 힘들다. 아ㅡ. 그리고 어제 이태원에서 사망한 젊은 친구들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리스 신화처럼, 연오랑세오녀처럼 모두들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다시 빛나기를..... 우리가 별을 보며 너희들을 추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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