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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양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I)
    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8. 5. 17. 05:28

    앞서 말한 클뤼니 박물관의 정조대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박물관의 전시공간에 나름 반했다. 박물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한 곳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을 통째로 박물관 전시관으로 꾸며 제정(帝政) 로마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고, 중세 클뤼니 수도원장의 거주지로 지어진 궁전 비슷한 건물에는 중세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획 전시물인 태피스트리 같은 직물은 예외였지만, 중세 전시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당대 암흑기(Dark age)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로마시대 공중 목욕탕을 개조한 박물관의 내외관. 분위기부터 뭔가 음산하다.  


    중세 박물관 전경. 여기도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태피스트리 전시실도 그러한데, 여기서는 큐레이터의 계산된 의도 같은 것이 엿보인다. 


    박물관의 상징 같은 잘려진 두상.


    두상들이 접합되지 않는 이유인즉 참수된 사람임을 말하려는 듯.


    마찬가지. 아무튼 기괴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아래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유물이었다. 주인공은 6세기 드니(Denis)라는 성인으로, 기독교에 반대하는 영주에게 참수되자 잘려진 자신의 목을 들고 10km를 걸어가 죽었다 한다.(그것도 찬송가를 부르면서 ) 7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군주였던 메로빙거 왕조 출신의 다고베르트 1세(603-639)는 훗날 드니의 무덤 위에 수도원을 세웠다. 다고베르트는 프랑크 왕조를 세운 선대왕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자연히 기독교도가 된 사람이었다.


    이 수도원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 지금의 생드니 왕립성당(Basilique royal de Saint-Denis)으로, 왕립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다고베르트 1세 이하 여러 왕들이 이곳 지하에 무덤을 마련한 까닭이다.(물론 다고베르트가 묻힐 때는 수도원이었다) 이곳에 묻힌 사람은 왕과 왕비를 합쳐 70명이 넘는데, 그들은 프랑스 대혁명 때 모두 꺼내져 인근공동묘지에 내팽겨쳐졌다. 그중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태양왕 루이 14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생드니 성당도 파괴시켜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에 금이 갔다.(이때는 생드니의 영험함이 통하지 않은 듯




    성 드니의 조각상

    잘려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몽마르트에서 생드니까지 걸어가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무튼 그가 참수당한 몽스 마르티스(Mons Martis, '순교자의 언덕')은 몽마르트가 되었고, 죽은 곳에는 세인트 드니(Saint Danis)를 기리는 생드니 성당이 세워졌다.


     

    생드니 성당의 어제와 오늘

    프랑스 혁명 때 크게 파손되었으나 초기 고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1136년 수도원의 재건축이 시작돼 1144년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재탄생하였다. 당시의 찬사와 비난(너무 화려해서)이 기록으로 전해지는 바, 파손되지 않았다면 노틀담 성당을 능가하는 프랑스 최고의 성당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


    왕들의 무덤


    생드니 성당 입구의 부조

    기독교도들이 참수당하는 와중에 자신의 잘린 목을 주워드는 드니


    생드니 성당 입구의 부조

    자신의 목을 들고 걸어가는 드니를 왕과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다. 



    성 드니의 유물은 중세 초기의 유럽 제국이 로마제국의 유산인 기독교를 그대로 전승한 것이 아니라 정착에까지 상당한 진통과 갈등을 거쳤음을 말해준다. 클로비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연은 제임스 헨리 로빈슨이 저술한 '유럽역사 읽기'라는 책에 그 절절한 내용이 전해진다. 


    클로비스의 군대는 같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알메니아족과의 전투에서 거의 전멸 직전에 이르렀다. 클로비스는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다. "살아 있는 신의 아들이며 억압받는 자에게 도움을 주고 승리를 안겨준다는 예수 그리스도 당신에게 간절히 기도 드리나니, 만약 당신께서 적들을 물리치어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면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겠습니다..... 이미 나는 나의 신들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들은 나의 청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께 청하나니 나의 소망을 들어주소서."


    기도의 결과는 놀라운 역전승으로 나타났고, 개선한 클로비스는 자신은 물론 신하 3천 명과 함께 세례를 받고 개종을 했다. 중세의 거대 기독교 왕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제후들까지 모두 개종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 앞서 말한 드니의 목을 자른 영주도 있었다. 아무튼 클로비스 이후, 기독교가 유럽의 대세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중세 기독교 시대의 서막을 연 클로비스 1세(445-511) 


    세례를 받는 클로비스



    이상 파리 클뤼니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더불어 생드니 성당까지를 훑어보았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클뤼니 박물관에 있는 생드니 상과 비슷한 유물이 우리나라의 경주국립박물관에 전해진다. 아울러 흡사한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전해지는데, 당연히 불교 버전이다. 


    * '동서양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II)'로 이어짐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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