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장자못 전설 & 소돔과 고모라
    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9. 10. 24. 23:57


    내가 사는 구리시 동네에 장자못이라 불리는 큰 못이 있다. 면적 107,000㎡로 연못이라 하기에는 크고 호수라 부르기에는 작은 규모이다. 정식 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장자못호수라고들 부르는 모양이다. 내가 구리시에 들어온 30년 전 이곳은 악취 심한 똥물 소택지로 시의 골치거리였으나 지금은 수질개선과 함께 어느덧 풍치지구로 단장돼 괜찮은 도심 공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괜찮음'에 걸맞은 전설도 어우러졌으니 당연히 '장자못 전설'이다. (☞ 내용은 아래의 안내판을! *^^*)





    그런데 위의 전설은 다른 곳에서도 들어 본 듯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전국에는 장자못 전설의 버전이 138종이나 되고, 실제 채록된 곳만 해도 39개 지역이었다.(최래옥, '설화와 그 소설화 과정에 대한 구체적  분석' 1968 서울대 석사논문) 우리나라에서 이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전국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전승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구리시 장자못 전설도 그 가운데 하나로서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포멧을 유지한다.


    1. 그곳에는 성격 더러운 부자가 살고 있다.

    2. 그 부자에게 탁발승이 시주를 구한다.

    3. 탁발승은 시주 대신 쇠똥 한 바가지를 선사받는다.

    4. 탁발승은 노여움 없이 돌아서고, 그 집 며느리가 바리를 씻어 (보리)쌀 한 되를 시주한다.

    5. 탁발승은 '운세를 보니 이 집이 곧 망할 징조'라며 며느리에게 난을 피할 방법 알려주고 산으로 올라간다.

    6. 이후 금세 천둥 번개가 치며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7. 며느리는 탁발승을 좇아 산으로 뛰어올라 갔으나 자신이 살던 집이 궁금해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어기고 뒤를 돌아다 본다.

    8. 자신이 살던 집이 물에 잠긴 것을 확인하는 순간 며느리는 몸이 굳어져 돌이 된다.

    9. 그 큰 비의 흔적이 지금의 연못으로 남아 있다.


    아울러 장자못 전설은 어느덧 한국판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 비교되기도 하는데,(박정세, '성서와 한국 민담의 비교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아마도 한국이 기독교 왕국이 되면서부터 불교 설화가 기독교 설화와 어우러지는 모양새가 된 듯싶다. 성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자못 전경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마옵소서.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 되리이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창세기 19:1-28)


    전에도 언급했지만 (장자못 전설과 달리)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은 그 동기가 매우 불분명하다. 그저 다음의 한 줄 내용으로써 소돔과 고모라 시민들을 악인으로 단죄한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세기 13:13)


    그래서 위 책의 저자는 소돔과 고모라 시민의 두 가지 구체적인 죄를 적시하는데, 하나는 우리가 익히 들은 '동성애 간음'이고 또 하나는 유목과 사막생활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원리인 '나그네 환대법'에 대한 위반이다.(위 책 pp. 99-100) 흥미로운 점은 책의 저자가 이 두 가지 범죄에 경중을 두지 않고 같은 비중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즉 성서를 다각적으로 해석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으로,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아래와 같은 일방적 시각보다도 훨씬 신선하다.


    얼마 후 소돔의 모든 남자들이 몰려와 롯에게 비역질을 할 수 있게(달리 뭘 하겠는가?)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 밤중에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 그들을 우리에게 건네면 우리가 알아보겠노라."(창세기 19장 5절) 그렇다. '알아보다(know)'는 공인판본으로 흔히 쓰이는 완곡어법으로, 여기서는 아주 우스운 것이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p. 361)


    반면 위 책에서는,


    소돔의 심판의 원인을 규명함에 있어 이 두 가지 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필자는 성적 타락이나 나그네 접대 위반을 일단 같은 비중으로 전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수학에서 말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에 관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본문의 성적 타락(동성간음을 포함하여)은 분명히 심판을 받는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만일 소돔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잘 대접했다면 그 다음 과정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본문에서는 그럴 여건이 형성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반면에 나그네를 환대해야 할 유목민의 기본적 윤리를 파괴하고 적대하는 것 역시 심판의 또 다른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즉, 만일 소돔사람들이 나그네 환대법은 위반하였지만 그 이외의 다른 면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래도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는가를 생각할 때 어떤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됨이 없이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어려운 점을 우리는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을 통해 볼 때 성적인 타락과 나그네 박대가 동시적으로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필요충분조건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박정세, '성서와 한국 민담의 비교연구' pp. 100-101)


    하지만 그 시각의 확장은 주목되나 나의 시각으로는 이상은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아울러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한국의 장자못 전설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두 이야기의 유사점은 오직 한 여인이 산으로 도망가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석화(石化)되었다는 것뿐이다. 나의 생각은 앞서 '소돔과 고모라를 폭격한 UFO'에 피력한 바 그대로로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소돔 시민들이 롯의 집 앞에서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은 그들의 심성이 본래 흉포해서가 아니라 낯선 틈입자들에 대한 집단자위권의 발동이라 보아야 옳다. 그들 자신의 입으로도 밝힌 대로 그것은 일단의 틈입자들이 자신들의 지배자가 되려 한다는 위기감을 느낀 때문일 뿐 이방인들과의 성관계를 위해 몰려든 것은 아니다.(성서는 그 이유를 소돔 시민들의 육성 증언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도 성서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딴소리를 해대며 확대 해석을 일삼는다) 


    '낯선 자들과의 성관계를 위한 폭동', 이는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해석일 뿐더러 위 성서 문장 어디에서도 이를 유추할만한 대목이 발견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아예 머리가 돈 변태 광인(狂人)이 아니고서야 남의 집 앞에 와서 비역질할 상대를 내놓으라 외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당신은 과연 이 상황의 이해가 가능한가?)


    그들이 방문자들을 내놓으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영문판의 내용에서 그 의미를 훨씬 더 명확히 전달받을 수 있다.


    "Get out of our way," they replied. And they said, "this fellow came here as an alien, and now he wants to play the judge. We'll treat you worse than them."


    문자 그대로 외계인 같은 놈(as an alien)이 들어와 우리의 판관이 되려 하기에(want to play judge) 그들을 상관하겠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때 보여준 천사들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명색이 천사라는 자들이었으니 성난 소돔 시민들이 몰려들었을 때 이들은 보다 영적인 방법으로서 탈출을 꾀했음이 옳았을 것이다.(말하자면 천사답게) 하지만 이들이 대응한 방법은 뭔가 물리적인 방법으로써 시야를 어둡게 만든 것이었으니, 필시 레이저 건과 같은 광학무기를 이용해 폭도들의 눈을 잠시 보이지 않게 한 것이리라. 아무튼 이 틈을 이용해 두 천사는 롯에게 다음의 말을 전한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두 천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의 소돔 정찰은 요식행위 같은 것이었고 도시에의 진멸은 이미 결정된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여호와가 아브라함의 감원(減員: 소돔 성에서 화를 면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인 것)을 쉽게 받아들인 것, 이 또한 실상인즉슨 아브라함의 의견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두 도시의 진멸이 기정화된 사실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창세기 8:22-33)


    이후, 그 진멸의 방법으로 핵폭탄을 투하한다.(당연히 자신들이 타고 온 UFO에서) 그런 까닭에 ‘피신하여 생명을 보존하되,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한 것이었으니, 핵폭탄의 열과 빛, 그리고 후폭풍과 방사능 낙진(落塵)을 모두 염두에 둔 지시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롯은 그 와중에서도 굳이 제 3의 성 소알 성으로의 피신을 고집하는데, 천사들은 롯의 가족이 그곳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들어서기 무섭게 핵폭탄을 투하한다.


    그 투하된 곳이 소돔인지 고모라인지, 아니면 그 두 도시 전부인지, 그 두 도시의 사이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서는 그 상황을 ‘해가 돋았다’는 짧고도 강력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해가 돋았다’. 이는 성서 지문의 ‘동틀 때’와 분명히 대비된다. 앞서 롯은 예비 사위들을 피신시키러 갔으나 그들이 농담으로 여긴 탓에 제 집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이미 동이 트고 있었다.(창세기 19:15) 그후 미적대던 롯과 가족들은 성 밖으로 이끌려 나갔고, 이후로도 천사들과 실랑이를 벌임으로써 천사들이 조바심을 느낄 만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다시 소알 성으로 피신하였던 바, 그들이 소알에 이르렀을 때는 동이 트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때 해가 떴다 하므로 이 해는 태양을 말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뜬 해는 과연 무엇일까? 물어보나마나 그것은 핵폭탄의 폭발 시에 생기는 동그란 버섯구름일 터, 성서의 기록자는 구전돼 오던 이 최상의 표현을 그대로 기록에 옮긴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미루어 보면 투하된 핵폭탄은 1기였으며, 또 이를 미루어 보면, 아울러 사해 5도시 가운데서 소돔과 고모라만이 유독 거론되는 것을 보면 제로 그라운드(핵폭탄이 떨어진 지점)는 그 두 도시 사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롯이 소알 성에 들어갈 때 해가 솟았더라' (창세기 19:23)


    핵폭탄이 터질 때 ,이처럼 해와 같은 고열의 버섯 구름이  솟구친다.  


     

    이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아울러 이어진 후폭풍은 유황불과 함께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사는 모든 사람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는데, 아비규환의 뒤가 궁금해 행동이 처졌던 롯의 아내는 불행히도 방사능에 피폭되어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가까운 사해(死海) 주변에 늘어선 저 소금기둥처럼. 그 악몽의 다음날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소돔과 고모라 쪽을 바라보니 아직 가라앉지 않은 폭연(爆煙)이 옹기 가마의 연기처럼 꾸역꾸역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헤브론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폭연을 바라보는 아브라함


      소돔, 고모라, 소알, 헤브론의 위치

    소돔과 고모라는 가끔 그 위치가 엇바꾸어 표기되기도 하지만 소알 성은 거의 불변이다. 롯의 동굴이 있는 고르 엣 사피 지역(아래 사진)이 오랫동안  옛 소알(조아르) 성이  있던 곳으로 구전돼 온 까닭이다.

     

     

    소알 성이 있던 곳?

     

    롯의 아내라고 구전돼 오는 바위

     

     

    내가 다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꺼낸 건 성서의 오해를 풀고 진실을 알리자는 뜻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두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다른 사람은 그 진실을 듣기 위해. 오랫동안 작업해온 '성서와 UFO'는 아직 메아리는 없지만 몇 사람의 독자는 있는 듯하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말할 것이며 쓰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