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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해군의 중립외교 (I)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11. 7. 06:57


    광해군의 중립외교..... 비록 인조반정으로 빛이 바래긴 했어도 그 빛나는 외교술이야 말로 광해군의 치적이요, 조선왕조 5백년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강대국에 압박을 받을 때 약소국은 어떠한 처신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했으며,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겨 국토와 국민의 생명을 보존했기 때문이다. 앞서 '삼전도비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서도 언급했지만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이괄의 난과, 그로부터 이어진 정묘호란,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진 병자호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울러 한민족 최대 치욕 중의 하나인 삼전도의 굴욕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 같은 광해군의 빛나는 외교술을 한 꼭지로 다룬 영화가 몇 해 전 1,200만 관객을 모은 '광해, 왕이 된 남자'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광해군이 도원수 강홍립에게 분위기를 봐 후금(後金)군에게 항복하라는 밀명을 내리거나, 강홍립이 후금의 누르하치에게 항복하는 장면 등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병헌이 신료들에게 그 극비사항을 주절이 주절이 떠들며 설명하는 대목이 전부다.(하지만 감동적이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폭군 광해가 행하지 않고 광해와 닮은 저자거리의 재담꾼이 행하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배경이자 맛이다.


    ~ 혼군(昏君) 광해가 외치(外治)는 어떻게 그리 잘할 수 있었는가에 1인 2역이 착상되었을 터, 그 저자거리의 재담꾼과 폭군 광해를 배우 이병헌이 멋지게 소화해냈다.




    영화는 위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아래처럼 되면서 시작된다.



    1616년 후금이란 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500년 전의 금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중원을 공격한다. 앞서 '우리의 사대주의 언제까지 갈 것인가? II'에서 설명했듯 이때 후금은 대국 명나라를 공격해 결국은 멸망시키는데, 그 분수령이 되었던 싸움이 사르후(隆爾滸) 전투[각주:1]로, 1만여 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원병으로 참가했던 도원수 강홍립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군사들과 함께 항복하며, 명나라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된 사정을 고한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광해군의 밀명에 따른 것이니, 당시 조선에서 명나라의 패배를 점친 사람은 광해군 혼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후신이 그린 파진대적도(擺陳對賊圖)

    조선군(오른쪽)과 후금군의 심하(深河) 유역에서의 첫 만남이다.


    김후신이 그린 양수투항도(兩帥投降圖)
    강홍립이 조선군을 이끌고 청태조 누르하치에게 항복하는 광경을 그렸다.

     

    사르후 전투 장소에 세워진 누르하치 동상


    누르하치의 칼(국립고궁박물관 ·심양고궁박물관 교류 특별전)


    사르후의 위치와 조선군의 참전로


    심하(深河) 전투를 그린 실진검격도

    이 전투에서 조선군과 명군은 후금 홍타이지의 군대에 대패한다.


    후금과의 전투

    위는 김후신이 그린 그림, 아래는 영화 '남한산성'의 스틸컷



    광해군은 사르후 전투 이후로도 계속된 명나라의 원군 요청을 이번에는 아예 묵살해버린다. 강홍립이 몰래 전한 현지의 정세를 냉정히 판단해 내린 결론이었다. 신하들은 당연히 난리를 쳤지만 광해군은 꿈쩍하지 않았다. 광해군은 이렇게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반정(反正)에 성공한 인조의 무리들은 다시 명나라를 숭상하다 결국 두 차례의 병란을 불러오게 되고, 마침내 임금 인조는 삼전도로 끌려가 청사에 길이 남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이상은 이미 '삼전도비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는데, 내가 새삼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의 꼴이 한심해서이다.


    앞서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의해 사드(THAAD), 즉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가 중국에게 호된 경제 보복을 당했다.(☜ '우리의 사대주의 언제까지 갈 것인가? I') 그래서 이에 굴복하여 바싹 꼬리를 내리고 사드의 추가 배치, 미국의 방어미사일 체계(MD), 한·미·일 3국 군사동맹구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不) 합의'를 보았다. 사실상 무조건 항복을 한 셈이었다. 조금 설명하자면, 중국이 사드, 즉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문제삼은 것은 미사일 자체보다 그 방어체계에 딸려 있는 이동식 레이더였다. 그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2,000km에 달하는 고성능이어서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자국군의 작전이 제한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자국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인즉 저들의 레이더망은 이미 좁은 한반도의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다. 중국은 이것도 부족한지 지난 달 말, 동북 길림성에 최신예 무인 전략기 샹룽(翔龍)을 10대 이상 배치했다. 이것은 첩보가 아니라 구글의 위성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에 우연히 포착돼 알려지게 된 것으로, 이로써 중국은 한반도 전역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레이더망은 무력화시키고 자신들의 방공망과 작전 식별지대는 넓히겠다는 것인데,(이렇게 되면 사실 전쟁은 하나마나다) 그래도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다.('3불 합의'를 해주고도 얻은 것은 경제 제재와 관광 제재가 해제된 사드 이전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비슷한 정도로 조율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지린성 솽랴오(雙遼)시의 위치


    솽랴오시에 배치된 샹룽


    샹룽은 중국이 개발한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항속거리 7,000km, 체공시간 10시간 정도이며 무기를 탑재시켜 전투폭격기로도 운용이 가능하다. 18,000m 고도에서 운용되며 전투반경은 2,000km 정도이다.



    전부터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의 이런 식의 저자세는 계속 저들의 버릇만 나쁘게 해줄 뿐이니, 쉽게 말하자면 학교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계속 구타당하는 학생과 하등 진배없다. 저항하지 못하니까 계속 맞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답답한 나의 마음을 확 틔워주는 발언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한 말은 아니고 지난달 21일 베이징 샹산포럼(중국 주도의 국제 안보대화)에 참가한 응오 쑤언 릭 베트남 국방장관이 한 발언으로, 그는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트남의 동해(남중국해)는 많은 안보 리스크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엔 해양법협약을 포함한 국제법에 따라 이 지역에서의 항공 안전, 항해의 자유를 지지한다."


    이것은 지난 2016년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헤이그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중국의 패소판결을 내린 사항에 기초한 연설이었다.[각주:2] 즉, 중국은 PCA가 판결한 국제법을 지키고 괜한 엄한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었으니 중국의 바다 넓히기 기도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을 것이었다. 베트남 국방장관은 그와 같은 경고를 과감하게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내뱉은 것이었다.



    연설하는 응오 쑤언 릭 베트남 국방장관

    2019년 6월 2일 싱가폴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해양 영토분쟁에 있어서의 주변국과의 우호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꿈 같은, 아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러다 혹 베트남도 우리와 같은  경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과거 2014년에 우리나라에 한 것과 같은 경제보복을 베트남에 행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렀음이니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기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일전에 그 일을, '아무리 작은 체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싸움에서 한번 이기고나면 큰 덩치의 놈들도 감히 까불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는 말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다음 2편에서 그 부러운 사건을 재론해 보겠다)




    중국이 확장한 피어리 크로스 암초

    중국은 필리핀,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스트래트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암초들을 마구잡이로 넓혀가며 인공섬 3곳에 미사일까지 배치했다. 하지만 PCA 판결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대부분의 섬은 섬이 아닌 간조노출지(썰물 때만 드러나고 밀물 때는 잠기는 지형)로 판명했다.


    중국이 섬이라고 주장하는 주비자오 암초

    중국은 이곳 수중 암초를 넓혀 각종 시설을 설치했다. 하지만 중국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PCA는 이곳을 간조노출지로 판명했고 따라서 EEZ(배타적 경제수역)가 작용될 수 없게 되었다. 유엔해양법에 따르면 섬은 12해리 영해와 200해리 EEZ가, 암초는 12해리가 인정되나 간조노출지는 아무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 



    * '광해군의 중립외교 (II)'로 이어짐' (클릭!)


    1. 1619년 지금의 랴오닝성 푸순 지방에서 벌어진 명과 후금과의 전투. 병력은 명군(軍)이 16만, 후금군은 4만 5천에 불과하였으나 후금군이 대승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본문으로]
    2. 영유권 확보를 위해 해중 암초에 들입다 콘크리트를 부어 인공섬을 만들어대던 중국은 이때 그야말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필리핀이 중재신청한 15개 조항 중에서 중국에게 유리한 조항은 단 1개도 없었으며, 중국이 섬이라고 주장하는 인공섬들은 암초의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간조노출지로 격하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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