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제주 삼성혈의 비밀
    탐라의 재발견 2021. 8. 14. 01:39

     

    제주도 자체가 이국적이기 때문인지 국립제주박물관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전시 유물들도 그러하거니와 건물과 초목도 그러한데 그중의 하이라이트는 박물관 중앙홀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탐라 개국신화인 삼성(三姓)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제주의 명산인 한라산과 나무와 사슴 등을 묘사했는데 여기의 많은 사슴들은 필시 백록담(白鹿潭)의 물을 마시던 흰 사슴일 것이다.(백록담은 '흰 사슴이 물을 마시던 연못'라는 뜻이므로)

     

     

    박물관 후원
    야외전시장의 연자방아
    박물관 중앙홀
    제주도 삼성신화를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
    2020년 9월 7일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후 일시 만수가 된 백록담 사진/서귀포 신문

     

    그리고 그 사슴들과 노는 신인(神人)과 활을 쏘는 신인도 묘사돼 있는데, 잘못 해석하면 언뜻 '잘 놀다가 활을 쏘는 것 또 뭐냐?'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정하기 위해 한라산에서 활을 쏘는 신인을 그린 것이다. 즉 모흥굴(삼성혈)의 세 지혈(地穴)에서 솟아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이 한라산에서 활을 쏘았다는 전설을 묘사한 그림인 것이다. 

     

     

    삼성혈은 태초에 고·양·부 씨의 3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전설을 지닌 세 구멍으로 옛날에는 모흥굴로 불렸는데,
    1526년(중종 21) 제주목사 이수동이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고 홍문(紅門)과 혈비(穴碑)를 세워 성역화하였다.(사적 제134호)
    제주시 화북동의 삼사석지 표석
    . 제주말로는 '활쏜디왓'이라고 부른다.
    세 신인(神人)이 쏜 화살이 떨어진 곳에 세웠다는 삼사석비
    삼사석지 주변
    화살 꽂힌 돌이 있는 곳이라는 설명의 삼사석 안내문
    안내문 내용

     

    앞서 '탐라국의 시조도 보트피플이었을까?'에서 전설의 이 3명의 신인이 삼성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한(前漢)과 신(新)나라 교체기에 중국으로부터 흘러온 보트피플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제주 삼성혈은 경주 계림이나 김해 구지봉처럼 이주민의 시조 전설이 어린 곳이 되겠는데, 앞 글에서 그 이주의 증거를 1928년 제주 산지항 공사 때 출토된 신나라 화폐 화포, 화천, 대천오십 등으로 설명한 바 있다. 다만 그들이 경주김씨나 김해김씨 시조와 같은 흉노족 계열의 이주민인가에 대해서는 추론이 막연하다.  

     

    하지만 정확한 이주 시기를 알 수 없는 경주김씨나 김해김씨 시조의 경우와 달리 탐라도(耽羅島)에의 이주민은 추론 가능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제주 심방(무당)들의 살풀이 가락이 그것이다. 

     

    영평(永平) 8년 을축 3월 열 사흗날, 자시에는 고을나, 축시에는 양을나, 인시에는 부을나, 고(高)·양(良)·부(夫) 삼성친이 도읍한 국(國)이외다.(良은 신라시대 때 梁으로 바뀌었다)

     

    살풀이의 이 첫 소절은 제주의 무당 치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그것이 오랫동안 구전돼 왔음을 알 수 있는데, 화북포구의 해신제(海神祭) 등에서 이 내용의 가락을 들을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평(永平)은 후한 명제(明帝, 후한을 건국한 광무제의 아들) 시대의 연호(서기 58~75년 사용)로서 영평 8년은 서기 65년에 해당된다. 경주 김씨나 김해김씨의 시조가 내한한 전한·신(新) 교체기보다 조금 늦은 연도다. 앞서도 소개했거니와 위의 국립제주박물관 전시실에서는 그들이 가져온 돈과 한대(漢代)의 구리거울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산지항 출토 신나라 화폐. 위는 오수전, 아래는 대천오십과 화천으로, 대천오십은 서기 8~14년, 화천·화포는 14~40년의 단기간에만 쓰여졌다. 당대의 무역통화(trade currency)일 것이라는 일반적 주장이 설득력 없는 이유이다.

     

    설화에 의존하자면 이들은 기품과 도량이 넉넉하며 활달하여 보통의 사람들과 달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입고 온 옷이 해진 후에는 가죽옷을 입고 동물을 잡아 생활해야 했는데, 현지인들 중에는 마땅한 베필이 없었던 듯 오랫동안 짝을 이루지 못하였다.(출토 유물과 유적으로 보자면 1세기 경의 제주도민은 원시인과 다름없었던 바, 그들의 눈에 차지 않았을지도..... --;;) 

     

     

    제주 삼양동유적전시관 마당의 남방형 고인돌
    전시관 마당에 재현된 1세기경의 움집과 2층 가옥. 실제 유적을 근거로 재현된 건물로 2층 가옥은 곡식 보관용 창고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시관 마당에 재현된 부족장 움집과 당대 사람들
    삼양동유적지의 실제 집자리 터. 발견된 236기의 집터 중 일부가 보존되었다.
    삼양동유적전시관의 유물들. 아래 왼쪽이 산지항에서 출토된 신·한나라 화폐의 복제품으로 1세기경 현지인이 사용한 석기 및 토기와는 현격한 시대 차이가 느껴진다. 자세한 사진은 ☞ '[탐라의 재발견] - 탐라국의 시조도 보트피플이었을까?'
    삼양동유적전시관의 화포, 화천, 오수전, 대천오십
    제주도의 신석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이런 화폐를 사용했다고? 이게 말이 돼?

     

    구전돼 오던 탐라의 삼성혈 신화는 조선조에 이르러서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영주지>, <탐라지> 등의 문헌에 남게 되었는데, 어느 신화나 전설에서도 그렇듯 시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메시지의 행간은 당대의 상황을 전달하기도 하니, 위의 세 신인이 배를 타고 온 동쪽 벽랑국의 세 공주와 혼인하였다고 하는 이어지는 삼성혈 스토리에서는 한민족 형성 과정에 대한 설화적 단초마저 제공한다.*

     

    * 우리의 오래된 상식과 달리 한국인의 유전자에서는 북방계보다 남방계 민족의 유전자가 더 많이 발견된다.(울산 과학기술원 게놈 연구소 ☞ '악마의 문' 인골은 한민족의 조상인가?') 오래전 쿠로시아 난류를 타고 올라온 동남아시아계 민족의 한반도 이주가 있었다는 얘기다.  

     

     

    고·양·부 씨의 세 신인과 벽랑국 세 공주가 결혼식을 했다는 서귀포시 성산읍의 혼인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흰죽물'로 불리는 마르지 않는 못이다.
    벽랑국 세 공주가 도착했다는 연혼포/컬처제주 사진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늘날의 삼성혈이 있기까지에 대해 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오래된 설화의 탄생지가 지금껏 완벽히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중종 연간의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가 모흥굴 주변에 울타리를 쌓고 북쪽에 금문(禁門)의 홍문(紅門)을 세우고 혈비(穴碑)를 세워 성역화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옛날 옛적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고작해야 평지의 구멍 3개가 아니었는가?

     

    뿐만 아니라 이수동은 매년 혈제(穴祭)를 올려 삼성혈의 신인을 받들게 했다. 이어 1698년(숙종 24) 절제사 유명한(柳漢明)이 삼을나묘(三乙那廟, 지금의 삼성전)를 세우고 혈제를 정례화시켰던 바, 오늘날 행해지는 '춘추 대제'의 모태가 되었다. 또 1772년(영조 48) 방어사 양세현(梁世絢)은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향청(鄕廳) 제사의 재원을 마련해주고 담장을 둘러 수림(樹林)을 조성하였던 바, 오늘날 제주시의 허파 역할을 하는 삼성혈의 울창한 숲은 그로부터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삼성혈 수림은 일제시대에 큰 위기를 맞았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는 제주도를 미군과의 결전장으로 삼았고 이에 섬 전체에 땅굴을 파고 기지를 만들어 결전을 준비했다. 이때 일제는 당연히 삼성혈 숲에  눈독을 들였으니 나무를 모두 베어 진지 구축용 목재로 쓰고자 하였다. 이때 삼성사 재단의 고인도(高仁道) 이사장이 목숨을 내걸고 벌목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일본군의 총칼에 둘러싸인 일본 사령관과 담판 때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바, 결국은 숲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비화가 그의 아들 고달익의 증언으로 전해진다.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지는 삼성혈의 숲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