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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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비운의 스토리 4 - 의자왕의 억울한 누명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9. 23. 00:59
일찌기 다산(茶山) 정약용은 자신의 시문집 "여유당 전서"에 '조룡대기'(釣龍臺記)를 적은 바 있다. 거기서 정약용은 패망한 나라의 왜곡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부정한다. 옛날 서울에서 지낼 때, 한 민가 벽에 그려진 그림을 봤다. 황금 투구를 쓰고 무쇠 갑옷을 입은 용맹스러운 장수가 쇠줄 한 가닥을 잡고 물 가운데 바위에서 용(龍)을 낚느라 애쓰는 모습이다. 용은 낚시에 걸려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로 머리를 든 채 앞발로 바위를 밀며 끌려 올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장수와 용은 서로 온힘을 쏟으며 혈전을 벌인다. 나는 물었다. “저것이 무슨 그림이오.” 답이 왔다. “옛날에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할 때 백마강에 이르렀는데, 신룡(神龍)이 나타나 짙은 안개와 괴상한 바람을 일으켜 배를 탄 군사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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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비운의 스토리 3 - 백제 장수 의직의 재발견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9. 21. 23:06
660년 당나라의 백제 침공 작전은 의자왕이 죽어다깨도 알 수 없을 만큼 은밀히 진행되었다. 그 일례로 들 수 있는 것이 659년에 당에 들어온 왜(일본)의 견당사(遣唐使) 일행을 661년까지 억류시켜 놓은 일이다.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백제에 침략 정보를 누설할까 보안을 꾀한 것이다. 이렇듯 당나라는 신라와의 밀약 속에 백제 침공을 착착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일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의자왕은 멸망 1년 전인 659년에도 신라의 독산성(獨山城)과 동잠성(桐岑城, 충북 영동)을 공격하는 등, 국력에 자신감을 보인다. 신라는 이 침공을 극력으로 막았다. 이번만 잘 버티면 당나라의 대군이 당도할 터, '두고 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짚고 가고 싶은 것이 있으니, 신라가 외세를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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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비운의 스토리 2 - 진(陳) 마지막 황제 진숙보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9. 19. 01:11
* 1편에서 이어짐. 이상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의 삼국시대는 서기 280년 오의 멸망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위·촉·오 삼국 쟁패의 승자는 뜻하지 않은 진(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군웅할거 시대에 대한 교훈이었을까, 진나라의 제왕들은 무(武)를 핍박하고 문(文)을 숭상했던 바, 팔왕(八王)의 난[각주:1]으로 나라가 흔들리게 되고 결국 흉노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만다.(361년) 그런데 다행히 황족인 사마예가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의 명백을 이으니 곧 동진(東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래 가지 못했으니 남쪽에서는 589년까지 동진,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다섯 왕조가 명멸하게 된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5호16국[각주:2]의 혼란을 종식시킨 북위(北魏)에 이어 동위(東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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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비운의 스토리 1 -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 손호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9. 17. 23:35
백제 의자왕에 대해 쓰려 한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후 마지막 왕 의자가 당나라 장안에 끌려가 7일만에 사망한 일, 이것은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의 최대 비극으로 생각하는 일이기에 한번쯤은 다뤄보고 싶었다. 삼전도에서 인조 임금이 청태 종 홍타이지에게 삼두고배(三頭叩拜)를 행한 일, 1910년 8월 29일 순종의 창덕궁에서의 마지막 공무(公務)도 슬프기 한량없지만, 그 두 사람은 무능의 끝판왕인지라 그리 정이 가진 않는다. 반면 의자왕의 경우는 한없이 슬프다. 망국의 오욕을 뒤집어 쓴 백제탑정림사 탑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 지금껏 선명하다. 삼전도 비(대청황제공덕비) 이 비석은 인조가 항복한 한강 삼전 나루 인근에 세워졌으나 이후 여기 저기 옮겨다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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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의 수수께끼(III)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4. 20. 23:58
일찍이 개화(改化)에 눈 떴던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불행히도 후사 없이 요절을 했다. 이에 헌종은 불과 여덟 살의 나이에 노론 세력인 안동 김문(金門)에 의해 옹립되었는데, 조금 나이가 들어 뭔가를 해보려 할 즈음 갑자기 죽고 만다.(그때가 23살로, 그에 관한 독살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나마 헌종은 후사가 없었던 바, 그다음 왕인 왕인 철종 역시 안동 김씨에 의해 옹립되었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변(昪, 초명은 원범)이란 왕족 청년을 데려다 왕위에 앉힌 것이다.(1849년) 이는 다들 일찍 가는 바람에 왕실에 근친(近親)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안동 김문이 제 입맛에 맞는 자를 찾은 결과이기도 했다. 이에 잠시 풍양 조씨에게 넘어갔던 힘은 다시 안동 김씨에게 넘어왔고, 철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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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의 수수께끼(II)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4. 16. 18:04
강화도 조약의 이야기에 웬 톰 크루즈인가 싶겠지만, 이 영화는 강화도 조약 체결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두 가지 단서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조선과의 관계는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라스트 신에 등장하는 아래 개틀링 기관총의 위력은 조선 땅 강화도에서도 십분 위력을 발휘했고, 그것은 조약의 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위의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는 허구이고 주인공 네이던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 분)도 당연히 허구의 인물이다.(미 남북 전쟁에 참전했던 알그렌은 퇴역 후 별볼 일 없이 지내다 일본 메이지 유신 때의 부국강병에 편승해 메이지 정부군의 훈련교관으로 가게 되는데, 이후 카츠모토라는 다이묘가 일으킨 내란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라스트 사무라이의 역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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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의 수수께끼(I)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4. 15. 17:21
이 땅에 외국 배, 즉 이양선(異樣船)이 처음 정박한 것은 1816년 9월 5일, 충청도 비인 근방의 마량진 앞바다에 나타난 머레이 멕스웰이 이끄는 2척의 영국 군함이었다. 이후 조선 해안에는 수십 차례에 걸쳐 이양선이 출몰했으니 1866년 7월에는 미국의 무장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오르다 좌초되어 불태워지기도 했다. 실록을 보면 이들 배를 비롯한 군함과 상선들이 1866년까지 조선 해안에 출몰한 것은 40여 차례에 가까운데, 이들의 대부분은 조선과의 통상을 원해 나타난 배들이었다. 하지만 통상에 성공한 예는 없었다. 반면 일본 막부는 도쿄의 외항인 우라가(현 요코스카 항)를 포격한 미국 함대의 함포사격에 놀라 1864년 쉽게 통상을 허락하고 개항까지 한다. 1864년 일본을 개항시킨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