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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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이 된 다문화 가정 출신 온달과 아차산성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1. 4. 3. 11:32
온달에 관해 쓴 글들을 보면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종종 눈에 띈다. 어떤 글은 친절하게 그에 대한 설명을 달아, 결혼을 잘해 일거에 신분상승을 하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망을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부른다며 온달도 그 범주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설명이다. 심리학적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여성이 남성에게 보호되어 살아가려는 의존심리를 지칭하거나, 억압된 분위기와 불안이 뒤엉킨 여성이 자신의 의욕과 창의력을 발현하지 못하고 일종의 미개발 상태로 남겨두려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Colette Dowling)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현대 산업사회에 들어 급격히 표출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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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주(北周)를 격퇴한 우즈베키스탄 혼혈아 온달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1. 4. 2. 01:23
구한말 학자 창강(滄江) 김택영은 나라가 망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며 조선의 역사를 집필하였던 바, 이 같은 행적이 단재 신채호와 유사하다. 단재의 경우는 요즘 말하는 진보적 사관으로, 고려 묘청이 외친 서경(西京, 평양) 천도론을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으로 평가한 문장은 유명하다. "만약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이 말은 단재의 진보적이고도 독특한 사관을 대변한다. 반면 창강은 , 등을 통해 담담한 시각으로써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에 알리는 일을 했는데, 그 역시 독특하게도 에 등장하는 '온달전(溫達傳)'을 조선 오천 년 이래 최고 명문장으로 꼽았다.(문장의 짜임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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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을 뚫고 맺은 고구려와 돌궐의 동맹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1. 3. 25. 06:55
지난 3월 16일 오후, 전날 몽골 초원에서 발생해 약 600명의 실종자를 냈다는 강력한 모래폭풍의 위력을 실감할 기회가 있었다. 내내 나쁜 시야가 불편하다 싶었고 눈 속의 이물감도 불편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 거울을 보니 눈이 충혈돼 있었다. 얼굴도 마스크를 한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색이 달랐다. 황사 먼지가 달라붙은 탓이었으니,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했기에 망정이지 입 안에도 흙먼지가 날아들 뻔했다. 아무튼 그날의 황사는 외신도 주목을 했다. youtu.be/qaan1wMGnN0 이 모래폭풍이 Powerful dust storm blankets almost all of South Korea Yellow dust storm forces citizens across country to 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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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외교력을 보여주는 퀼 테긴(闕特勤) 비문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1. 3. 23. 23:38
터키 공화국의 전신은 한때 아시아· 유럽·아프리카 3대륙을 경영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다. 막강 오스만 제국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을 잡고 세상을 나눠가지려 했으나 그들 동맹군이 패망하며 영토가 확 줄어들었다. 그 오스만 제국의 전신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으로, 동로마 제국을 위협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200년 십자군 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나라였다. 그 셀주크 제국의 전신이 우리나라 역사에도 등장하는 돌궐(突厥) 제국으로, 돌궐은 투르크(혹은 튀르크)의 가차(假借)식 표기다. 투르크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을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옮겨 적었다는 뜻이다. 역사적 고증에 있어 사소한 것과는 충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뿌리는 좌우지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다음의 질문이 따른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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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국기 해시태그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9. 9. 00:34
I, II편에서 이어짐. 이상을 정리하자면 해시태그는 고구려의 국기나 군기(軍旗), 혹은 국장(國章)임에 틀림없다. 국기의 사전적 정의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인데, 당시의 천조각이 남아 있는 게 없으므로 해시태그 자체를 국기나 국장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의 비밀을 좇아 간 심광주 박사의 3만리 탐사여행 결과 장군총 석침(石枕, 돌베게) 방향이 가리키는 곳이 백두산 천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 부호는 '하늘의 우물', 곧 천지(天池)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장군총은 중국이나 일본 학계에서 주장하는 장수왕이나 광개토대왕의 무덤이 아니라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무덤인 바, 해시태그의 연혁도 소급되어야 마땅하다. 앞서 '해시태그는 광개토대왕의 상징부호였을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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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는 광개토대왕의 상징부호였을까?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9. 6. 22:19
이처럼 중국에서도 고구려의 해시태그가 발견되는 것은 이 문양이 고구려에서 널리 쓰였다는 방증일 것이었다. 다만 그것이 얼마큼이나 보편적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을 뿐인데, 아래 심광주 박사의 고구려 집안 탐사기는 중국정부가 얼마나 고구려에 대해 민감한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고구려에 무심한가를 말해준다. 앞에서도 인용한 소설보다도 더 재미 있고 실감나는 심광주의 중국 탐사기 의 한 쪽을 같이 한번 읽어보자. 촬영과정은 극도의 긴장감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너무도 고달팠다. 유적이 있는 곳은 대부분 시골이라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고, 아직 중국이 철저한 통제사회로부터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면 바로 공안에 신고를 해서 몇 번이나 촬영을 중단하고 황급히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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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해시태그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9. 4. 01:48
한성 백제의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이 어디인가는 우리 역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여태껏 그 위치가 설왕설래되고 있다.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도 그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로서 정약용이 에서 언급한 이래 한치윤의 , 그의 조카 한진서의 해동역사속(海東歷史續, 해동역사 부속 지리서)에서도 위례성의 위치로 비정됐고, 이후 고산자 김정호, 일본인 사학자 이마니시(今西龍), 천관우, 이병도, 윤병무 교수 등의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지금도 그곳은 하남 위례 신도시라고 불린다) 그 추정의 중심에 있는 곳이 하남 이성산성으로, 백제 궁(宮)이 있었다는 춘궁동의 지명과 함께 지금도 1,925m에 이르는 성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성 이름인 이성(二聖)이 비류와 온조를 일컫는다는 속설도 따라붙는데, 해발 20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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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고구려정(亭) 기와가 붉은 이유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7. 19. 07:16
고구려 정자가 서울 하늘 밑에 있다고 하면 믿기 힘들겠지만 분명 있다. 이름도 풋풋하게 고구려정(亭)이다. 물론 재현된 정자이나 근방에서 발견된 고구려 기와를 토대로 하였던 바, 아주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기와편은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눈에 띄는데, 아래 집안 고구려 와당(마구리 기와) 사진 밑의 회청색 기와편은 아차산 석실고분을 찾다가 발끝에 걸린 것이고, 붉은 색 기와편은 홍련봉 고구려 보루 근방에서 주운 것이다. 사실 아차산성 일대에서는 고구려 와당도 발견됐고 지금도 파손된 기와편이 심심찮게 나온다. 역사를 더듬자면 아차산성은 백제 개로왕이 남진한 고구려 장수왕을 맞아 싸우다 목이 달아난 곳이며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을 맞고 전사한 곳으로, 1,500년이 지난 지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