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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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물난리와 을축대홍수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8. 21. 10:11
8월 늦장마에 서울을 할퀴고 가더니 지금은 충청도 지방을 헤집고 있다. 그동안 행정당국에서 나름대로 치수(治水)를 했을 텐데 이처럼 큰물이 지나간 후에는 늘 무력감을 느낀다. 잠시 내려갔던 장마전선이 주말에 다시 북상한다는데 참으로 전에 없던 사태라 지구의 기후변화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강남역이 잠기려나? 지난주 월요일 비 오는 강남역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다 미끄러져 계단 모서리에 등을 찧었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갈비뼈 2개가 금 갔단다. 여러모로 자세가 안 나와 (특히 잘 때) 고생하고 있는데 그래도 뒤통수를 부딪히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하고 있다. 비단 강남역뿐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날 일대는 정말로 난리였다. 주변보다 지대가 낮은 지역이니 물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인데,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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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사의 변곡점 신익희 후보 서거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8. 18. 22:58
서울 강동구 강동역에는 구리빛 찬연한 동상이 하나 서 있다. 해공(海空) 신익희 선생의 동상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무척 낯선 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선생은 격동의 시기 1894년에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해 갑오개혁과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있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해 신문물을 익힌 그는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의원과 초대 내무차관을 지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요직을 거치며. 독립에 헌신했다. 그의 임정 활동에 있어 특징적인 것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은 평화적인 방식을 표방하되 실질적으로는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 각지를 돌며 한국청년들에 의한 군대조직을 만들려 애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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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남은 박길룡의 건축물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7. 31. 06:30
앞서 김동진이라는 건달이 같은 조직원인 이석재에 총을 맞은 종로 3가 단성사(團成社) 극장을 언급하며 당시의 사진을 실었다. 그러면서 "왠지 예술관의 품격이 느껴진다"'고 말했는데, (☞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진실 III - 동대문사단 이정재') 말이 나온 김에 단성사 극장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목적이 있었으니, 혹시 그 건물이 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이 아닐까 해서였다. 어쩌면 박길룡의 작품을 하나 발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지만 기대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1907년 서울의 소상공인 지명근·주수영·박태일 등이 공동 출자하여 세운 상업 영화관 단성사 목조 2층 건물은 설계자가 명시될 정도의 건물이 아닌 듯했는데, 다만 무대 설치와 설비 등의 제작은 진고개 일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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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고개 넘어 서울대병원으로 진격한 북한군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7. 18. 20:18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6.25전쟁은 시작됐다. 이후 서부지역은 황해도 옹진반도, 개성·장단·연천지방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는 이곳이 모두 3.8도선 안에 속한 남한의 영토였다) 하지만 워낙에 방비가 미약했던 탓에 방어선은 곧 무너졌고 문산·동두천·포천·의정부지역이 속수무책으로 뚫리고 말았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8일 새벽 1시경 미아리 최후방어선마저 뚫고 서울로 진입했다. 전쟁 개시 불과 3일도 안 돼 수도 서울에 북한군이 들어온 것이었다. 가까워지는 포격 소리에 이미 장안은 공포의 도가니가 되어 피난민이 몰리기 시작했으나 피난길은 여의치 않았다. 한강다리가 6월 28일 새벽 2시 40분경 폭파됐기 때문이었다. 북한군이 미아리고개를 넘어선 지 2시간도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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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정을 사른 서른다섯 불꽃의 삶 나석주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6. 30. 22:38
2019년,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을 두고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신용하와 경제사학자인 이영훈(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 크게 충돌한 적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영훈이 *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 내용 중에 신 교수를 거론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용훈은 당시 "신용하라는 학자는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책을 쓰면서 일선 군청이나 법원에 있는 토지대장이나 지적도를 열람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 일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였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싸움의 불씨를 지폈다. 는 2019년 7월 미래사에서 출판한 역사학 서적으로, 이영훈, 주익종, 김낙년 교수 공저로 집필한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은 일본 자체를 악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른바 반일 종족주의)에 저항하여 나름대로 올바른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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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대통령과 부인 홍기 여사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6. 29. 18:35
최규하(崔圭夏, 1919~2006)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대통령 직위를 가장 짧게 누렸던 비운의 대통령으로 회자된다. 강원도 원주 태생의 그는 본래 학자를 지향했다. 그리고 그 뜻대로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였으나 이후 행정부에 차출되어 관료로서 일했고, 특히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67년 외무부 장관이 되었고 1975년 국무총리에 올랐다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으로 제10대 대통령에 피선되었다. 이후 12.12사태 등의 격랑의 시절을 보내다 이듬해 5.18로 집권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의해 7개월여 만에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듯 내려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전두환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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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남이장군 사당과 새남터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6. 25. 16:47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男兒二十未平國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한다면後世誰稱大丈夫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는가. ㅡ 남이(南怡) 장군의 북정가(北征歌) 앞서 가평 남이섬에 있는 남이장군 무덤은 친일파 민영휘의 직계 후손이 장사속으로 조성한 가짜 무덤이고 진짜 무덤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울에 남은 친일파 갑부의 흔적 I ㅡ민영휘 저택') 부언하자면, 주변에 남생이가 많아 남(생)이 섬의 이름을 얻게 된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주인 모르는 돌무더기 묘가 하나 존재했는데, 그것이 남이섬의 이름과 합체되며 남이장군의 무덤이 된 것일 뿐,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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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난 왜군, 근대 일본군과 미군, 용산강 그 오욕의 강물을 넘어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6. 23. 19:18
* '벽제관 전투와 용산의 왜·명 강화비'에서 이어짐. 심원정은 서울 용산구 원효로4가 용산문화원 바로 위 언덕에 있던 정자이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 패배하던 왜군과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군이 화전(和戰)을 위한 교섭을 벌였던 장소이다. 따라서 이곳 심원정과 용산강 일대는 임진왜란 전쟁사에 있어서 한 전환점을 이룬 전적지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후 이곳은 고종 때의 영의정 조두순(1796~1870)의 별장이 되기도 하였고, 현재는 정자는 없고 왜명강화지처(倭明講和之處碑).라고 음각된 비가 남아 있다. 윗글은 2016년 용산문화원 뒤 오래된 느티나무와 천연기념물 6호 백송이 있던 공터에 세워졌던 '심원정터' 안내문의 내용이다. 하지만 즈음하여 정자가 복원됐고, 이에 지금은 '현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