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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 (I)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17. 10. 26. 00:41
올해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라 한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 문 앞에 게시하고 그릇된 제도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의했다. 그것이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었다. 그 500주년에 즈음한 오늘, 나는 그 거대한 개혁의 초석이 된 고구려 출신의 한 남자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 이름은 고선지이다. 고선지(高仙芝)는 고구려의 유장(遺將) 고사계의 아들로, 20세 초반의 나이에 당(唐)나라 유격장군이 되어 당시 당나라의 가장 골칫거리였던 토번국(티벳)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대당(大唐) 제국 전선(戰線)에의 화려한 데뷔였다. 이후 그는 740년, 달해부 전투에서 2천 기병을 이끌고 승리하여 중앙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이후로도 서방 정벌전에 승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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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안데르탈인의 슬픈 죽음 (I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7. 10. 24. 20:07
(I 편에서 연결됨) 그러던 중 2015년 4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을 두고 학계의 의견이 여전히 분분한 가운데, 이들이 현생 인류와 달리 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멸종의 화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의 22일자 보도했다. 약 3만 년 전까지 유럽에서 서아시아지역에 걸처 분포한 초기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 등장한 뒤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와 영국 배스대학교의 합동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불을 사용하지 않은 채 음식을 해 먹었고, 이것이 멸종의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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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안데르탈인의 슬픈 죽음(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7. 10. 23. 23:24
1856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독일 뒤셀도르프 근방의 석회암 채석장에서 정체불명의 유골 화석이 수습되었다. 형태로 보아서는 분명 사람의 뼈인데, 그 모양새가 현대인과는 많이 달랐다. 대퇴골이 매우 굻고 휘어져 있었으며 해골의 이마는 낮았고, 무엇보다 툭 튀어나온 눈 주위 뼈가 눈길을 사로잡는 인골이었다. 해골은 정수리 부분에서 이마와 위 눈덩이까지만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인골을 네안데르탈인(人)이라 이름 붙였다. 인골이 발견된 채석장이 네안데르(neander) 계곡(thal)이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명명이 나름 의미 있다. 그 계곡이 네안데르라고 불린 이유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시인인 요하임 노이만(Joachim neumann)의 이름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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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V)성서와 UFO 2017. 10. 18. 22:43
앞선 챕터에서 설명했듯 삼위일체론은 그 사상적 투쟁을 통해 이제는 신·구교의 확실한 신론(神論)으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그 결론은 아직도 생각있는 많은 신학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유인즉 삼위일체론을 바탕으로 한 칼케돈 신조에는(뒤의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포함하여) 문장 그대로 3명의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부인 하나님이 있고, 성자인 하나님이 있고, 영적인 하나님(성령)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론의 토대를 마련한 터툴리아누스나 이를 완성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았으리니 그들은 분명 하나님은 한 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아리우스의 일신론, 네스토리우스의 이성론(二性論), 에우디케스의 단성론(單性論) 등과 싸우는 과정에서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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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I)성서와 UFO 2017. 10. 17. 15:41
칼케돈 공의회와 ‘기독교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네스토리우스는 그렇게 정죄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력 자체가 몰락된 것은 아니었던 바, 그들은 나름대로의 살 길을 찾았다. 그리하여 흐트러진 세력을 규합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이후 다시 한판 붙은 것이 451년(10월 8일부터 11월 18일까지) 보스포러스 해협 인근 도시 칼케돈에서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였다. 네스토리우스파가 다시 공의(公議)를 요구하게 된 것은 앞서 개최된 에페소스 공의회의 결과가 다분히 정치적이었고 게다가 사감(私感)에 좌우된 결정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그들은 여전히 논리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었던 바, 그 이유는 아직도 동방교회가 다음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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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성서와 UFO 2017. 10. 8. 17:18
2. 새로운 이단 마케도니우스파의 등장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로서 아리우스파가 물러난 이후 교계는 잠시 잠잠하는 듯했으나, 4세기 중반 그리스 반도의 마케도니아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마케도니우스파가 나타나게 된다. 그 파의 주장은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은 인정하겠으되 성령은 이에 종속된다는 것이었다. 즉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써 히브리서 1장 13-14절에서 언급된 천사와 같은 유형의 중간 존재이며, 그리스도의 시종으로서 권력과 능력면에서 그리스도 밑에 종속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터키 카파도키아 교회의 교부들에 의해 반박 당했던 바,(카이사에라의 바실리우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등) 이를 정리하기 위한 종교회의가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렸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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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성서와 UFO 2017. 10. 1. 00:12
1960년, 연해주에 있는 발해의 옛 절터에서 진흙으로 빚은 십자가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러시아의 연해주 고고학 전문가인 샤프쿠노프 박사가 아브리스크 성의 발굴 과정에서 수습한 것인데, 그 모양이 영락없는 시리아 기독교식의 십자가 형태였다. 아울러 발해 5경의 하나였던 동경용원부에서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석제 삼존불상이 발견됐는데, 학자들은 이 모두를 기독교의 전래 흔적으로 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세계적인 대제국을 형성했던 당나라에서는 초기 기독교의 한 종파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교가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한때 성행하였던 바, 대당(對唐) 문물교류와 함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가 발해에 유입됐다고 보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그렇다 해도 유럽 문명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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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와 노아에 관한 진실 (III)성서와 UFO 2017. 10. 1. 00:11
앞선 I, II 편에서는 방주의 제작에 관한 의문과 지금껏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노아의 인간성을 들여다 보았다. 이어 이 III 편에서는 대홍수의 허구성에 대해 언급해보려 한다.(참고로 대홍수 이야기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과 부족들이 공유하는 설화로서, 그 버전이 무려 500가지 정도나 된다 한다) 1922년~1929년, 세계 최고(最古)의 수메르 문명 유적과 아브라함의 도시 우르를 발굴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레너드 울리는(*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 참조) 이에 그치지 않고 더 오래된 문명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울리는 시굴구(試掘溝) 방식으로써 계속 땅을 파내려갔지만 더 이상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대신 마지막 바닥에서 뜻밖의 성과를 일궈냈다. 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