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삼백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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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를 찾아라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0. 2. 26. 07:33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불행히도 한국이 그 중심에 들었다. 반면 진원지인 중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한풀 꺾였고, 그러자 WHO에서는 "세계가 우한 시민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발표를 내보냈다.(WHO 브루스 아일워드 박사) 중국 당국이 우한을 과감히 봉쇄한 것에 대한 찬양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중국은 대번에 한국을 까고 나왔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을 뿐이다.(☞ '페스트에 내몰린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 I') WHO의 브루스 아일워드 박사가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AFP) 기고만장한 중국이 '자신들을 재평가해야 된다'고 난리 블루스를 추는 가운데 CBS 노컷뉴스의 안성용 특파원이 2월 25일 베이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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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누가 가장 먼저 올랐는가?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9. 10. 30. 06:56
1856년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8,586m의 칸첸중가였다. 하지만 1856년 측량을 위해 인도에 파견된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가 초모룽마라는 산을 측량하여 8,848m임을 밝혀냈다. 이후 '여신의 집' 초모룽마는 세계 최고봉의 영예를 얻었지만 그것도 잠시, 곧 발견자 에레베스트에게 그 이름을 양보해야 했다. 아니 빼앗겼다는 표현이 옳을지니 지금은 누구도 초모룽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힘의 논리에 좌우된 결과였다. 그런데 이 산에서 1953년 또 한번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텐징 노르가이, 그는 최초 정복자의 영예를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양보해야 했다. 아니 빼앗겼다는 표현이 옳을지니 그는 하루품삯 1루피(25원)를 받는 일개 셰르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195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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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못 전설 & 소돔과 고모라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9. 10. 24. 23:57
내가 사는 구리시 동네에 장자못이라 불리는 큰 못이 있다. 면적 107,000㎡로 연못이라 하기에는 크고 호수라 부르기에는 작은 규모이다. 정식 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장자못호수라고들 부르는 모양이다. 내가 구리시에 들어온 30년 전 이곳은 악취 심한 똥물 소택지로 시의 골치거리였으나 지금은 수질개선과 함께 어느덧 풍치지구로 단장돼 괜찮은 도심 공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괜찮음'에 걸맞은 전설도 어우러졌으니 당연히 '장자못 전설'이다. (☞ 내용은 아래의 안내판을! *^^*) 그런데 위의 전설은 다른 곳에서도 들어 본 듯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전국에는 장자못 전설의 버전이 138종이나 되고, 실제 채록된 곳만 해도 39개 지역이었다.(최래옥, '설화와 그 소설화 과정에 대한 구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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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왜 티무르의 무덤을 열었나?(II)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9. 10. 5. 23:57
1941년 6월 22일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소련군은 정신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잘 계획되고 훈련된 독일군의 공격이 워낙에 막강하기도 했지만 독·소 불가침조약만을 믿고 방비를 게을리 한 탓이기도 했다. 아울러 스탈린이 자신의 독재권력 강화를 위해 1차세계대전 때의 경험 많은 노장들을 모두 숙청한 탓에서 오는 지휘관의 부재도 큰 몫을 했다. 146개 사단 300만 명의 대군으로 북부 중부 남부의 3로(路)로 쳐들어오는 독일군에 소련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2,000대의 전투기와 3,000대의 전차를 앞세운 저들의 화력에 맞설 수 있는 무기도 부족했다. 이와 같은 독일의 대대적인 공격은 소련의 멸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와 카스피해 유전을 손에 넣어 전쟁에의 보급을 원활히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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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왜 티무르의 무덤을 열었나? (I)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9. 10. 4. 23:58
아무르 티무르, 그는 어쩌면 칭기즈칸 다음 자리에 놓일 수도 있는 유명한 정복자로서 자신의 당대에 중앙아시아와 인도, 러시아와 옛 페르시아 땅을 휩쓸고 시리아에서 서인도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한 사람이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닌데, 내게 티무르는 다음과 같은 기억으로 여지껏 남아 있다. 역사의 가정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만, 학교 다닐 때 배운 세계사의 사건 중 가정을 하고픈 것 두 가지 중 그 이름 티무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첫 번째는 몽골 제국의 오고타이가 죽지 않았으면, 즉 동유럽을 점령한 몽골의 바투 원정대가 오고타이의 죽음으로 회군하지 않고 그대로 서유럽까지 진격했으면 세계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티무르 제국의 아미르 티무르가 병사하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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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 왕의 공수래공수거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9. 9. 4. 23:57
신의 축복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금이 됐다는 미다스 왕의 일화는 정말로 슬프다. 소원을 이루었지만 그 기쁨을 누린 시간은 너무도 짧았기에..... 미다스의 기쁨은 반나절도 못 가 슬픔으로 변했으니 우선은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고,(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먹을 수는 있었다) 그가 안은 사랑스러운 딸마저 황금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돈 잘 버는 사람을 미다스의 손(Midas touch)에 비유하지만 과연 옳은 비유인지는 모르겠다.(과거 마이더스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불린 그의 이름은 지금은 희랍어인 미다스를 되찾았다) 미다스 손 마크 퀸(Marc Quinn)이 제작한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황금 조각상 지금의 터키에 있던 미디스 왕의 프리기아 왕국은 앞서 '알렉산더 대왕과 티레 전투'에서 설명한 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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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II)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8. 5. 18. 09:30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아래 이차돈 순교비는 '이차돈 공양당(異次頓供養幢)', 또는 백률사에 세워진 관계로 '백률사 석당(栢栗寺石幢)'으로도 불려진다. 527년 이차돈이 순교한지 약 300년 뒤인 817년(헌덕왕 9)에, 이차돈의 순교를 기념하고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된 6각의 석당이다. 화강석에 조각되었으며 본래 석당 위에는 지붕돌이 씌워 있었던 듯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하지만 조각의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어서, 목이 잘려진 이차돈의 몸에서 뿜어지는 피, 떨어진 목, 그리고 그때 내렸다는 꽃 비를 모두 살필 수 있다.(나머지 5면의 글자는 마모되어 식별이 어렵다) 이차돈 순교비(104x29cm/보물 지정 예정 유물) 삼국 중에서 신라의 불교 공인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무려 150년 이상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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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I)전설 따라 삼백만리 2018. 5. 17. 05:28
앞서 말한 클뤼니 박물관의 정조대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박물관의 전시공간에 나름 반했다. 박물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한 곳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을 통째로 박물관 전시관으로 꾸며 제정(帝政) 로마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고, 중세 클뤼니 수도원장의 거주지로 지어진 궁전 비슷한 건물에는 중세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획 전시물인 태피스트리 같은 직물은 예외였지만, 중세 전시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당대 암흑기(Dark age)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로마시대 공중 목욕탕을 개조한 박물관의 내외관. 분위기부터 뭔가 음산하다. 중세 박물관 전경. 여기도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태피스트리 전시실도 그러한데, 여기서는 큐레이터의 계산된 의도 같은 것이 엿보인다. 박물관의 상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