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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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가 살았던 인천 금곡동 동네와 헌책방 거리작가의 고향 2023. 11. 7. 22:14
소설가 박경리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인천의 주안염전부터 먼저 언급해야 될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말하자면 주안염전은 서해안 최초의 염전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천일염이 생산된 곳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것이 되지 못한 이유는 이미 부산에 분개염전을 비롯한 염전이 있었기 때문인데, 하지만 그곳은 천일염이 아니라 바닷물을 끓여 만든 이른바 자염(煮鹽)을 생산하던 곳으로, 분개염전의 분(盆)자 자체가 바닷물을 끓이는 가마를 뜻했다. 부산에서 생산되는 자염은 가공이 힘들고 생산비용이 높았다. 따라서 생산량이 적어 수요를 충족하기 힘들었는데, 이에 개화기 무렵에는 중국인들이 자국의 암염(巖鹽)을 들여와 널리 유통시켰다. 암염은 석탄처럼 채굴을 하는 (혹간 노천광도 있지만) 소금으로 중국과 유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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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 이태준의 고향 철원작가의 고향 2023. 10. 13. 20:53
월북 작가 중 소설가 상허(常虛) 이태준은 시인 임화와 함께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케이스다. 사실 월북 작가 중에서 벽초 홍명희를 제외하고는 잘 된 경우가 드무니 거의가 말년이 안 좋았다. 그럼에도 이태준과 임화의 최후가 특히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평소 사회주의를 동경해 활동했고, 그래서 해방 후 자진 월북해 사회주의 조선의 품에 안긴 특별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과 시에서 특출난 재주를 보였던 두 사람은 해방 후 박헌영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나섰고, 김남천·이원조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했다. 그리고 이태준은 1946년에, 임화는 1947년에 각각 월북했지만 이태준은 사상성의 꼬투리를 잡혀 평양에서 쫓겨나 해주로 갔고, 다시 1974년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지구로 재추방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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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국인 거리에 남은 소설가 오정희의 흔적작가의 고향 2023. 8. 14. 06:16
이른바 성장소설로 불리는 소설 중에서 명작이 세 편 있다. 발표된 순서대로 쓰자면 첫 째는 오정희의 이고, 둘 째는 은희경의 , 셋 째는 공지영의 이다. (물론 주관적인 분류이다 / 둘 째와 셋 째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번외로 정이현의 을 넣고 싶은데, 속 인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을 지났던지라 성장판이 이미 닫혔을 때다. 그래서 성장소설로 분류하기 어쭙잖아 뺐지만, 성장판은 닫혔으되 철은 아직 덜 들었던 두 사람(소설 속 주인공과 나)에 있어서는 그 시대의 아픔이 필시 오랫동안 간직되었을 터이다. 은 주인공이 고등학교 시절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창 R을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재회해 친교를 맺고, 이후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까지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따라서 성장소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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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동 시절의 김수영작가의 고향 2023. 3. 23. 00:31
촌놈처럼 보이지만 김수영은 1921년 서울의 중심지인 종로2가 관철동 158번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은 낮은 오피스 빌딩의 차지가 되었는데, 집 터 표지석을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종로2가 탑골공원 맞은편 길가에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세워졌다고 탓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나, 기실 관철동 골목 안쪽에는 세울 곳이 마땅치 않으며 또 있어봤자 눈에 띄지도 않는다. (☞ '김수영의 풀') 그 이듬해인 1922년 김수영 일가는 종로6가로 이사했다. 김수영은 이곳에서 효제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다닐 때까지 살았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난을 안 가고 서울에 머물다 북한군에 징집되었고 이후 국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1952년 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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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과 와사등(瓦斯燈)작가의 고향 2023. 3. 9. 00:18
앞서 김소월을 말하며 그를 시업(詩業)과 사업을 병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사업 실패는 시업도 접게 만들었으며 결국 다량의 아편을 술에 타 먹음으로써 스스로 삶도 접었다. 소월의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이면은 어쩌면 그를 신비롭게 만들었으니 32살의 나이로 사라진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시인으로 남았다. 반면 시업과 사업을 병행하면서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는 김소월, 백석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어교과서에 가장 많은 시가 실린 시인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도 서너 편이니, '설야'(雪夜), '추일서정'(秋日抒情), '와사등'(瓦斯燈)은 확실히 실렸고, '외인촌'(外人村)은 수록 여부가 확실치 않치만 제목만큼은 충분히 귀에 익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아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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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왕십리작가의 고향 2023. 2. 25. 18:52
김소월은 윤동주와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의 시 60여 편을 듣고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의 시 60편이 가곡으로, 혹은 대중가요로 작곡되었다는 소리인데, 못 잊어 / 진달래꽃 / 초혼처럼 가곡과 대중가요로서 각각 작곡된 노래도 있다. 아마도 이런 예는 김소월의 시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대중가요로 작곡된 시 중에서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들도 있으니 예전 대학가요제 때 라스트 포인트가 부른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해변가요제 때 활주로가 부른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역시 소월의 시이다. 희자매의 '실버들', 최진희의 '먼 후일' 아이유의 '개여울', 나훈아의 '부모' 등도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한결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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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경계에 섰던 심훈작가의 고향 2022. 11. 6. 23:11
의 작가로 친숙한 심훈(본명 심대섭)은 우리에게는 '그날이 오면'이란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기도 하다. 교과서에 시가 소개됐기 때문인데, 이 시는 1930년에 3.1만세운동 11주년을 기념해서 쓴 것으로, 자작 시집 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먼저 그 시를 다시 한번 감상해보자.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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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원의 시 헐성루와 금강산 정양사작가의 고향 2022. 10. 22. 21:16
'조선 여류시인의 살롱 삼호정' 호스트 김금원을 그냥 보내기가 좀 아쉽다. 그래서 그의 시 몇 편을 더 올리려 하는데, 우선 세인들이 흔히 김금원의 대표작으로 드는 '헐성루'(歇惺樓)를 덧붙이려 한다. 금강산 유람길의 그녀가 정양사(正陽寺) 헐성루에 올라 지은 시이다. 그 누각은 '별이 쉬어가는 누각'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녔다. (그저 나의 해석일 뿐이다) 歇惺樓壓洞天中 纔入山門卽畵林 指末千般奇絶處 芙蓉無數萬峯尖 헐성루가 하늘 중천에 우뚝한 가운데 겨우 산문에 오르니 곧바로 그림 같은 숲 속이다 손끝 마디마다 기암절벽이 와닿고 부용꽃은 무수히 봉우리 꼭대기마다 피어 있다 정양사 헐성루는 부석사 안양루나 전등사 대조루처럼 비탈을 올라 올라서 누각 밑으로 들어가게끔 만든 구조의, 출입문과 강당을 겸하는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