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페르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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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里門)과 삼천리연탄 공장이 있던 이문동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1. 8. 00:56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은 동네에 있던 이문(里門)에서 비롯됐다. 이문은 조선시대 도둑을 막기 위해 각 마을마다 설치한 문(門) 모양의 초소로, 형식이나 기능이 오늘날의 방범초소와 비슷했다. 이문은 문자 그대로 마을 입구에 설치됐으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중구 세종대로 삼성본관 앞, 성동구 상왕십리동, 마포구 염리동 등에도 이문(里門)의 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종로 탑골공원 앞 도로와 세종대로 삼성본관 앞 도로에는 이문 표석이 설치돼 있다. 종로의 이문은 흔히 종각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회자되나 1901년 제작된 아래 한성지도를 보면 순화궁 밑이다. 그래서 현재 순화궁 표석이 있는 종로중앙 종합금융센터에서 인사동 골목 방면으로 위치한 '아름다운 차 박물관', 혹은 '아리랑 참숯불갈비'나 그 부근에 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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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인 명나라 궁녀 굴씨 이야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5. 18:03
앞서 말한 고양시 덕양군 대자동 산65-2의 야산인 대자산에서는 소현세자의 후손들 외 명나라 궁녀 굴씨의 무덤도 만날 수 있다. 굴씨의 무덤은 어제 올린 밀풍군 무덤 사진의 숲길을 따라 약 50미터 지점에 있는데 예전에는 찾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그 언저리에 아래와 같은 푯말이 세워져 길 안내가 된다. 푯말에 쓰여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명, 청나라 교체기의 궁녀로 성은 굴씨(屈氏) 이름은 저(姐)로 알려져 있다. 굴씨는 중국 명나라 소주 지방 양인 출신의 딸로 태어나 명나라 숭정황제를 모시는 궁녀가 되었다. 이후 청태종의 아들이 그녀를 보고 구애하였으나 굴복하지 않고 청나라에 잡혀온 소현세자를 모시게 되었다. 청나라 심관에서 소현세자를 모시다가 조선으로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 조선으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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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후손 경선군·임창군·밀풍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3. 22:15
조선의 16번째 임금 인조(재위 1623∼1649)의 맏아들 소현세자(1612∼1645)가 독살된 이야기는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범인은 아버지 인조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간 고초를 겪었던 왕자의 귀국과, 이에 자신이 왕위에서 떨려날까 염려한 인조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임을 당하는 스토리의 영화 '올빼미'가 만들어져 상영되기도 했다. 실록에도 소현세자의 죽음이 독살임을 깊게 암시하고 있으니 1645년(인조 23) 6월 27일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소현 세자의 졸곡제(卒哭祭)를 행하였다. 전일 세자가 심양에 있을 때 집을 지어 단확(丹艧,고운 빨간 빛깔의 흙)을 발라서 단장하고, 또 포로로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모집하여 둔전(屯田)을 경작해서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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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약령시장의 용골(龍骨) & 갑골문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31. 00:44
지난 주말, 지나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그리고 고양이 뿔만 빼고 다 있다는 소문의 제기동 약령시장을 다녀왔다.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구경삼아 지난 길이었지만 소문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은 지나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낭설 같은 소문의 진위를 따지자면 확실히 진실이다. 내가 무엇을 따로 증명할 것도 없이 걷기의 효능이야 이미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바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의 실제 임상효과로써 밝혀진 바 있다. 걷고 나니 처음에는 다리와 무릎이 뻐근했다. 제기동·용두동 일대에 걸친 약령시장의 면적만도 23만5천㎡라 하는데, 아무리 직선거리를 걸었다 해도 청량사→영휘원→부흥주택단지→약령시장→선농단→보제원 터→다시 약령시장→청량리역을 경유해 돌아왔으니 꽤 먼 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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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의 명암, 청량리 588과 부흥주택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30. 00:51
지금 청량리 588과 부흥주택을 기억하는 분은 몇이나 될까? 스스로 답을 하자면, 청량리 588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분이 많을 듯하고 부흥주택은 현존하지만 주민들 외에는 기억하는 분이 거의 없을 듯하다. 제목에서 말한 대로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이 두 곳은 현대화의 명암이 짙게 드리워진 곳으로, 청량리 588은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이었고, 부흥주택은 서울의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1950년대 중반, 정부와 서울시가 조성한 최초의 대규모 공영주택단지이다. 청량리 588은 사라졌지만 미아리 텍사스와 더불어 지금도 집창촌의 대명사처럼 불려진다. (종암동의 미아리 텍사스촌은 지금도 잔존한다) 그런데 고유지명처럼 불린 청량리 588에 숫자가 붙은 내력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실제로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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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雩祀壇)을 찾아서(II) - 제기동 우사단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26. 20:23
다시 우사단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제기동(祭基洞)은 동네 이름 자체가 '제사 터'라는 뜻이니 반드시 뭔가 있을 듯했는데, 방아다리 공원에서 만난 어르신네의 친절한 도움으로 아래의 표석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쓰여 있기를, "제기동은 '하늘과 사람이 제사로써 하나가 되는 신성한 터전'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은 동녘 햇살 속에 삼각산과 한강의 기운이 어우어지는 최고 길지인 이곳 '제터마을'에 동적전(東籍田)*을 열어 국가의 토대로 삼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 동적전은 조선 시대, 왕이 농사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서울에 둔 논밭을 말하는데, 아래 '제터마을기념비'에는 한자가 잘못 적혔다. 부근의 마을은 따로 감초마을로도 불리는 듯 '제기동 감초마을 주민협의체'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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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雩祀壇)을 찾아서(I) - 보광동 우사단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24. 20:27
천자는 천지에 제사 지내고 제후는 사직에 제사 지낸다.(天子祭天地諸侯祭社稷)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이로 인해 한민족 역사 중에서 적어도 조선은 천신(天神)에 제사 지낼 자격이 없었고 오직 땅과 곡식의 신에만 제사 지낼 수 있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제 한 몸의 영달을 위해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스스로 중국의 제후국임을 자처하였던 바, 《예기》에 쓰여 있는 규범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천단(天壇)이 없고 종묘와 사직만 있었다. 종묘는 조상신에게,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다. 사직단은 서울 외에도 부산, 동래, 진주, 대구, 남원, 광주, 보은, 산청, 창녕, 고성 등에 세워졌는데, 부산 사직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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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이강공 탈출 사건과 대동단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21. 20:53
1919년 11월 9일, 한중 국경인 중국 안동(현 단동시)에서 의친왕 이강(李堈, 1877~1955)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흔히 이강공(李堈公) 사건, 혹은 대동단(大同團) 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은 비밀 항일 결사단체인 대동단이 고종의 셋째 아들 이강을 상해임시정부로 탈출시키려다 붙잡힌 사건을 말한다. 대내외에 큰 충격을 준 이 미증유의 사건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은데, 그 전에 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대동단에 대해 알아 보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 또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이라고도 부르는 대동단은 1919년 3.1만세운동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항일 비밀 결사체로서 1919년 3월말 서울에서 조직됐다. 대동단은 귀족, 정·관계, 종교계, 상공인, 청년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