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페르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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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찰 용광사가 있던 용리단길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2. 5. 21:08
개항기에 들어서며 한강변 둔지미 땅은 개시장(開市場, 다른 나라와의 통상을 허가했던 시장)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조선 정부는 개시장으로 삼개(마포) 땅을 제안했다. 그곳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재정고문 독일인 뭴렌도로프가 옛 안평대군의 정자 담담정(淡淡亭)에 경강 세관을 설치했던 곳이기에 미미하나마 외국 통상에 대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을 개항시킨 일본은 도성과 좀 더 가까운 둔지미 땅을 원했다. 지금의 용산 땅으로, 용산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이 일대에 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바꿔 부른 지명이 굳어진 것인데, 반면 둔지미라는 우리의 고유지명은 상실되었다. 둔지미는 한성부 남부 둔지방(屯芝坊) 내 지역으로서 이곳에 있던 나지막한 산의 이름인 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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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삼각맨션아파트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2. 2. 22:03
젊은 세대까지 불어닥친 트로트 열풍 때문일까,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가 지금도 애창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그 곡을 부른 배호라는 가수는 이름만 들었지 사실 나도 본 적이 없다. 곡이 발표된 해가 1967년이니 낯이 서는 것은 당연한데, 다만 그해 완공된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한때 서울의 명물이기도 했거니와 그 구조물이 철거된 해가 1994년 12월로, 비교적 근자인 까닭이리라.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차량들이 신호 대기 없이 번잡한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회전식 로터리식으로 설계되어 입체 구조물 위를 빙글 돌아 제 방향을 찾아가게끔 만들어졌다. 까닭에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들이 이곳에 진입했다 몇 바퀴를 도는 일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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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전기 산업에 관한 복잡다난한 일들과 을지로 한국전력 서울본부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1. 30. 19:33
1882년 미국과 수교한 조선은 초대 미국 공사 부임에 대한 답방으로써 민영익을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워싱턴으로 보냈다. 이른바 보빙사로 불린 그들 사절단은 귀국 후 발달된 서구 문명을 고종에게 입에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는데, 그중에서도 전기불이라는 게 있어 밤이 낮처럼 환하다는 내용은 듣는 이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고종은 밤새 놀다 새벽에 잠들어 낮 3시쯤에 일어나는 지독한 야행성 인간이었던 바, 밤이 낮처럼 환하다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고종은 단박에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가를 물었고, 이에 조정에서는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 전기등 설치를 의뢰하였다. (지금의 제너럴 일렉트릭은 에디슨이 세운 전기조명회사를 모태로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뛸 듯이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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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왜(大和倭)와 도래인잃어버린 왕국 '왜' 2024. 11. 28. 00:18
'한반도 왜(倭) 실재론'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사료들을 다 긁어 분석해 보아도 고대 왜국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그것이 6세기경 신라에 밀려 열도로 건너가 야마토 왜가 된 것인데, 이는 훗날 금나라에 밀린 요나라가 서진(西進)해 서요(西遼)라는 나라를 세운 것과 같은 양상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진짜 역사는 사장(死藏)되고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가짜 역사만 남았다. 한반도의 왜가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은 1986년 도쿄대 교수인 인류학자 하니하라 가즈로(埴原和郞)의 주장으로 구체화된다. 하니하라는 일본인의 골상과 얼굴, 외양 등을 토대로 5세기 경의 도래인(渡來人) 수를 컴퓨터로 계산했다. 근거는 4세기까지의 일본 주민인 조몬인은 남방계 몽골로이드로서 머리가 앞뒤로 긴 장두(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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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임신서기석 이두문과 기독교의 하나님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4. 11. 27. 12:23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1934년 5월 경주 북쪽의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石丈寺) 터 부근 언덕, 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자리에서 발견된 돌로, 유교 경전을 습득하고 실행할 것을 맹서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과거에는 이를 새긴 사람이 신라의 화랑이라고 가르쳤으나 사실 화랑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바, 지금은 신라의 두 젊은이라고 설명된다. 글자는 냇돌의 자연석에 5행으로 74자를 새겼다. 돌의 크기는 작은 편으로 길이는 약 34 cm, 너비는 윗부분이 12.5 cm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두께는 약 2 cm이며, 1행 18자, 2행 16자, 3행 14자, 4행 16자, 5행 10자로 되어 있는데, 맨 처음 임신년(壬申年)이라는 간지가 적혀 있어 '임신년 맹서를 기록한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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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에서 세상 떠난 이재명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24. 11. 25. 22:02
앞서 원태우 지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양 석수동 현장을 찾아보았다. 언급한 대로 이 일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를 처단하려는 최초의 시도로서,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결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절명했다. 그런데 안중근에 앞서 이토를 처단하려는 또 한 사람의 지사가 있었던 바, 그가 바로 이재명이다. 이재명 의사가 순국한 날(1910년 9월 30일) 는 '교수대에서 세상 떠난 이재명'이라는 제목으로 아래 사진과 함께 그의 의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실었다. 하지만 이재명 의사가 처형을 당한 것은 이토를 단죄하려는 사건 때문이 아니라 매국노 이완용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기 때문으로, 이에 관한 내용을 당시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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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등박문을 저격한 원태우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24. 11. 24. 22:11
1905년 11월 18일 새벽 1시,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조약문에 서명 날인함으로써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대해서는 앞서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과 고종'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당시의 분위기만을 다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17일 밤 8시, 덕수궁 중명전에 는 참정대신 한규설 · 외부대신 박제순 · 내부대신 이지용 · 법부대신 이하영 · 학부대신 이완용 ·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 군부대신 이근택 · 탁지부대신 민영기가 대한제국의 대표로, 일본국 전권특사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와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일본국의 대표로 마주 앉았다. 대한제국의 외교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을사조약에 관한 협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협상은 자정을 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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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수 반수교에서 흥덕사 · 증주벽립까지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1. 20. 23:07
2020년 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성균관과 반촌'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을 본 기억이 있다. 솔직히 그때는 빈촌에 대해 잘 몰랐던 때였음에도 3d로 생동감 있게 재현된 반촌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고 감명 깊었다. 그래서 주체 측에 부탁해 아래의 전시 포스터를 한 장 얻어와 방에 붙여 놓고 감상하기도 했다. 반촌은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지만 한자로 풀면 금방 이해가 간다. 여기서 반은 '학교 반(泮)' 자다. 즉 반촌은 요즘말로 대학촌이며 여기서 말하는 대학은 당연히 성균관이다. 성균관은 조선 건국 후 곧바로 세워진 교육기관으로, 아래 성균관대학교 탕평비각 앞 표석에는 1398년(태조 7)이라는 설립연도를 각자해 놓았다. 그리고 근자에는 설립 600주년 행사를 갖기도 했지만, 사실 이것은 실소할 일이다. 지금의..